빗속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용기

“지금은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비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있어.”
“택시를 부를까?”
건물을 나서려는데, 학생들이 입구에서 서성인다. 교육 중이라 몰랐는데, 점심까지는 괜찮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로 학생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랬다.
나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갔다가는 어떤 상태가 될지 눈앞에 그려졌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한발 나섰지만, 장대비에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3단 우산을 핑계 대며 다시금 뒤로 물러섰다.
“두두두두두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여전했고, 시간은 10여 분이 흘렀다.
몇몇 학생들이 더 이상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 있는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빗길로 걸어갔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학생은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감싸고 맨몸으로 빗속에 몸을 던졌다.
빗속의 모습들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학생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빗줄기가 잦아들자, 나 역시 용기 내어 우산을 펼쳤다. 차가 있는 곳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이기에, 장대비가 조금만 기다려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간신히 용기를 낸 몇 걸음. 신발이 젖지 않으려고 나름 안간힘을 쓰며 조심히 한발 한발 내디뎠다. ‘비가 이대로만 내려주면, 괜찮아.’라며.
안도의 마음도 잠시, 갑자기 바람이 불어, 우산이 꺾이고 말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 보다 더 강한 빗줄기가 온몸에 퍼부었다. 아이스버킷챌린지처럼 온몸에 빗물을 쏟아붓는 거 같았다. 젖지 않으려 조심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소용이 없는 상태가 되고만 것이다.
‘아.......... 하늘이시여.’ 짧은 순간. 나는 신(神)을 찾았다.
결국, 맞을 비는 맞게 되어 있는 것일까.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도 종류가 많은데, 하필 장대비라니.. 모두 젖어버린 옷가지와 신발에, 체면과 조심스러움을 모두 포기하고 그냥 걸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는 그저 수긍하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물기 가득한 스펀지가 되어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땐, 언제 비가 쏟아졌었나 하는 것처럼 비가 그치고 있었다.
삶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비를 만날 때가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10여 분만 더 참고 건물 안에 있었다면, 나는 비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계속 기다릴 수도 없었던 것이 조금 전의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거센 비바람에 온몸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피할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폭우는 나를 참으로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시원함도 있었다. 나에게는 불편한 상황을 만든 비이지만 또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빗줄기였을 수 있다.
다음번에 또다시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그때는 젖어도 될 용기를 가지고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삶을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삶을 산다는 것은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비비안 그린 -
유은지 작가는
10년이상 개인의 커리어와 마음의 성장을돕는 상담사로 일하며,결국 글쓰기가 삶의 열쇠임을 알게된 뒤로 글을 쓰고있습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삶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저서] 마음에 길을 묻다. 치유글약방. 성장글쓰기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