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과 커피 체리
푸념을 내뱉듯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어.” 하는 내 말에 친구는 나지막하게 대답한다.
“그건 너의 욕심이야.”
“너의 바람과 마음을 접고, 타인의 눈으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좋겠어. 그러면 각자의 감정, 상황도 보다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네가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의 시절인연을 만났고 너에게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시간, 사건들 속에서 너 자신을 돌아보면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보이면서 성숙해지고 단단해지지 않을까? 나는 너에게 그런 의미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네 옆에 함께 있을게.”
불교 신자다운 그녀의 시선과 조언, 좋은 친구를 곁에 둔 것 같아 힘들었던 마음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봄빛이 땅에 베인 듯 노란 낙엽들을 살포시 밟으며 걷다 보니 나도 가을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든다.
계절의 변화 안에서 잎이 떨어지고, 때가 되면 다시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 나 또한 인생의 특정 시기에 만나는 사람과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겪으며 성장하는 나무와 같진 않을까?
성장하는 나무, 그 가지에 작게 열렸던 초록색의 커피 열매가 점점 커지며 붉게 익어가듯이 말이다.
커피 열매의 성장 단계와 커피 체리의 맛
커피 열매는 수정이 되면 4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성숙해져 간다.
수정 후 6~8주까지는 씨방이 아주 천천히 자라는 초기 단계에서 수정 후 2개월~4개월 사이에는 외피와 씨방이 함께 빠르게 성장하는 단계가 된다.
4~5개월에는 배젖이 성장하는 단계로 생두의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지면서 외피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외피는 껍질만 남아 생두를 감싸게 되는데 이를 실버스킨(Silver skin)이라 한다. 중과피 또한 이 시기에 성장하면서 과육이 된다.
수정 후 6~9개월 정도가 된 생두는 과육이 점점 더 성장을 하고, 커피 열매는 초록색에서 붉게 변하게 된다. 대부분의 커피 체리는 익어가면서 색이 붉어지지만 품종에 따라 노란색이 되기도 한다.
초록색을 띄는 커피 체리는 향미가 없는 상태로, 맛이 거칠고 떫은맛이 나기에 수확하지 않는다. 녹색의 체리가 수확이 되었다면 선별과정에서 제거해 준다.
덜 익은 체리는 풋내가 강하고, 단맛은 별로 없고 신맛과 거칠고 쓴맛, 떫은맛을 가지고 있다. 아직 덜 익었기에 체리가 단단하고 카페인 함량도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적당히 익은 체리는 덜 익은 체리에 비해 무거워지고 당분과 수분의 함량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때 수확이 이루어진다.
커피 체리가 더 익어 과숙되면 발효가 된 과일의 맛이 날 수 있는데 와인과 같은 맛을 원할 경우 조금 더 체리가 익은 상태에서 수확을 하기도 한다.
과하게 익은 단계를 넘어 체리가 마를 경우, 마른 체리에서는 담배와 같은 향미를 갖는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시절인연.
인연에는 때가 있어 그 시기가 되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지게 되고, 자연의 섭리로 시작과 끝조차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아무리 거부해도 인연의 때가 맞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
커피 체리도 열매를 맺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시기마다 나는 시절의 맛이 있듯,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생을 살며 계절의 변화처럼 찾아오는 인연과 일들 안에서 그 시절에만 만들어지는 인격의 향미가 있지 않을까?
모두 때가 되어서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인연들, 그리고 일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는 나의 문제이며 지금의 시절인연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결실을 맺어 성숙시킬지는 나의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그녀의 조언이 가을 낙엽처럼 포근하게 마음에 머무는 날이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