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윤 작가 에세이

  • 등록 2025.02.18 0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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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닮은 뱅쇼


차가운 겨울바람이 잠잠해지자 독감은 아닐지라도 감기에 걸리는 수강생들이 늘었다.

 

커피의 향미를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수업, “콜록, 콜록” 기침을 하는 수강생들이 코가 막혀 향이 느껴지지 않고,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후각과 미각을 이용해 커피를 해석해야 하는 수업에서 코가 막혀 향과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그 답답함이 어떠할지 헤아려진다. 느껴진 향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 대신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오늘은 커피보다 따뜻한 뱅쇼 한 잔을 건네주고 싶은 날이다.

 

 

뱅쇼(Vin Chaud)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의미가 있는 음료이다. 중세 유럽 귀족들이 와인에 정향, 계피와 같은 향신료를 넣어 겨울에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음료였다. 이러한 음료가 프랑스에서 레드와인에 오렌지, 레몬과 같은 과일들, 계피, 정향 같은 향신료, 설탕이나 꿀을 넣어 끓이는 방식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뱅쇼가 되었다. 레드와인은 혈액순환을 돕고, 계피와 정향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겨울철 감기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는 커피에서도 자주 쓰이는 플래이버 노트(flavor note) 중 하나이다. 특히 내추럴 가공(Natural Processing)이 된 커피에서 느껴지는 산미와 향을 베리류 과일에 비유하고, 신맛과 단맛에 따라 적포도, 청포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에티오피아 내추럴 가공이 된 커피, 콜롬비아 게이샤 등에서 느껴지는 베리류의 향미는 가공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포도의 당분이 효모에 의해 발효가 되면서 알코올과 향기 물질로 바뀌듯이, 커피에서 느껴지는 베리류의 향미 또한 커피 열매가 내추럴 가공(Natural Processing)이 되는 과정에 의해 생성된다.

내추럴 가공방식은 커피의 가공 방식 중 하나로 건식법(Dry Process)이라고도 불리며 가장 오래된 가공 방식이다.

 

내추럴 가공은 잘 익은 열매를 수확한 후, 미성숙한 열매, 썩은 열매, 이물질을 제거하는 선별 과정을 거쳐 커피 열매 그대로 햇빛에 건조한다. 햇빛에 건조하는 방법은 콘크리트 바닥에 커피 열매를 얇게 깔아 햇빛에 말리는 파티오(Patio) 방식, 아프리칸 베드(African Bed)를 이용한 건조, 기계식 건조(Mechanical Drying) 3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내추럴 가공은 아프리칸 베드라 불리는 건조대 위에서 뒤집어 가며 수분 함유량이 10~12%가 될 때까지 골고루 말려준다. 건조 과정은 약 2~4주간 진행된다. 완전히 건조된 커피 체리에서 과육을 제거하고 파치먼트 상태로 보관했다가 탈곡을 한다. 내추럴 가공을 하는 나라는 에티오피아, 브라질, 예맨 등이 있다.

 

커피 열매의 껍질과 과육 성분이 햇빛에 건조되는 동안 생두에 영향을 주어 향과 맛이 다채로워진다. 레드와인이나 포트와인 같은 향, 딸기, 블루베리, 열대과일 같은 복합적인 향과 발효의 향을 갖는다. 또한 주석산(Tartaric Acid)이 생성되고 단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감기로 인해 커피의 향미가 느껴지지 않아 힘들어하는 수강생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를 등에 지고 에티오피아 내추럴 가공이 된 원두를 도징컵에 옮겨 담는다. ‘또르륵’ 소리를 내며 원두가 도징컵 안으로 들어간다. 에티오피아의 꽃 향과 베리류의 향미가 잘 느껴지도록 추출 레시피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라인딩을 시작한다. 뜨거운 물을 드립포트에 담아 차분한 마음으로 추출을 시작한다.

와인에 레몬과 오렌지를 넣듯, 블루베리, 와인과 같은 향이 서버에 담기도록 원두가루에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준다. 물줄기의 굵기를 바꿔가며, 천천히, 빠르게 속도도 달리하여 정성스레 추출을 한다.

 

추출을 끝내고 서버에 담긴 커피를 잔에 조금 덜어 향미를 먼저 느껴본다. 와인의 풍미, 베리류 과일의 향기와 산미, 은은한 단맛이 입 안에 퍼진다. 삼키고 나니 은은한 꽃 향도 함께 느껴진다. 뱅쇼는 아니지만 따뜻한 에티오피아의 태양빛을 받으며 자라고 말려져 풍성해진 향미를 담고 있는 커피를 수강생들 앞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코가 막혀 향은 느낄 수 없겠지만 커피에 담은 따스한 마음은 전해지길 바라며 커피의 향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 본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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