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게 살고 싶어!
아주 오래전, 누군가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때 나는 망설임 없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난 웃기게 살고 싶어요.”
‘웃기게’란 말이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삶을 대하는 내 태도가 너무 진지하고 무겁지 않게, 어쩌면 희극처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의미였을까?. 그때는 막연히 ‘웃기게 살고 싶다.’라는 한 문장이 나의 머리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웃으며 살고 싶다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웃으며’가 아니라 난 웃기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럼 웃음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그 후로 다시 누군가와 그런 얘기를 해 본 적도 없었지만, 가끔 나는 ‘웃기게 살고 싶다.’라는 그 말을 생각한다.
동사 ‘웃기다’는 ‘누군가를 웃게 만들다’라는 뜻도 있지만, ‘한심하고 기가 막히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웃기고 싶었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었다. 또한, 누군가에겐 자칫 어설퍼 보이고 부족해 보여 답답하게 느껴질 테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삶이 엉성해서 더 좋았다. 여기저기 빈 구석이 많은 하루하루가 좋다. 너무나 허점 많은 나의 일상을 남편은 얼마 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어디 쓸려고 해도 쓸데가 없다. 살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재주도 없고, 성격도 별로고 가족을 잘 챙기는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어쩜 저리 정확하게 사람을 표현하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할까 싶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좋은 것을 어쩌랴? 나를 깔아뭉개는 말을 들어도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라는 말로 가볍게 넘겨버리고 그 자리에 웃음을 가져다 놓을 줄 알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싶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가 본다. 결론은 너무 막막한 현실에 허둥지둥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던 어느 시절, 본능적으로 내가 선택한 살길이 아니었을까 한다. 사람은 시련이 닥치면 어떻게 해서든 헤쳐나갈 방법을 찾는 법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든 외부에서 어떤 것을 구하든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나는 그것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 안에서 치열하게 구했고 결국 발견한 것이리라.
나는 어떤 순간에도 삶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기를 진정 원했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한 편의 희극이길 희망했다. 그 바람이 어쩌면 난 웃기게 살고 싶다는 엉뚱한 문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바람대로 사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매 순간 그런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웃고 있음을 안다. 모든 심각성 앞에서 빈틈을 찾아내어 그 무게를 덜어낸다. 그래서일까 내 앞의 삶은 점점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다.
다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해도 나의 대답은 같을 것이다.
“난 정말 웃기게 살고 싶고, 그런 내가 너무 좋다.”라고 말이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