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를 닮은 말
3월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는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에 머무른듯하다. 두꺼운 겨울 외투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여 옷깃 속에 얼굴을 파묻고 걷는다. 호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문장 속 마침표와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오늘은 꼭 택시타고 출근해요. 몸 안 좋을 때 무리하지 말고 추운데 따뜻하게 가요.”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열과 기침에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던 주말 아침 출근길. 아프다는 말에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걱정하던 분, 택시비와 함께 온기를 전해주는 듯한 따스한 말에 코끝은 찡해진다. 그리고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의 말은 그가 평소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닮아 있다. 적당한 압력과 시간으로 부드러운 크레마층 아래 가둬둔 은은한 향기와 깊은 단맛이 있는 따뜻한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에서만 볼 수 있는 크레마(Crema)층은 이산화탄소(CO₂), 지방, 단백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갈색의 거품층이다. 생두가 로스팅되면 원두 안에 이산화탄소가 생기게 되고, 원두 안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추출 시 닿게 되는 뜨거운 물과 압력에 의해 방출이 되면서 크레마의 형성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두의 지방 성분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고압으로 분사되는 물에 의해 유화(emulsification)되어 크레마의 질감을 부드럽게 해준다. 원두 내 단백질은 크레마의 표면장력을 높여 크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갈색 색소인 멜라노이딘(Melanoidins)은 크레마의 색상과 점도를 결정하게 된다. 또한 크레마 안에 있는 미세한 커피 입자는 크레마의 풍미와 질감을 증가시킨다.
크레마는 원두의 종류, 추출 조건(분쇄도, 물의 온도, 머신의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크레마는 향미의 밸런스가 좋고, 균일하고 조밀한 질감, 약 3~5mm 정도의 적절한 두께, 황금빛 갈색을 띤다. 스푼으로 크레마층을 밀었을 때 천천히 다시 모양을 잡는 것이 이상적이다.
에스프레소가 이상적인 크레마층과 긍정적인 향미를 담으려면 좋은 땅에서 농부의 정성 어린 손길을 거쳐 자라고, 숙성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생두를 잘 로스팅하고, 추출 조건을 맞춘 후, 추출이 되어야 비로소 깊고 풍부한 향과 단맛을 지닌 에스프레소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말 또한 에스프레소와 같지 않을까?
그의 짧은 말이 따스함을 담은 메시지로 전해지기까지 그는 한 그루의 커피나무가 좋은 땅에 심기듯, 자신의 마음을 돌보며 아름답고 따뜻하게 가꾸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이 숙성되어 다정함과 온기를 담고 있는 말이 된 것은 아닐까?
진정한 다정함은 오랜 시간 쌓아온 배려와 진심, 이해와 애정에서 비롯된다. 그의 짧은 말이 내게 위로가 된 것은, 단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말에 담겨 있는 진심이 가득한 애정이었다.
커피가 깊고 풍부한 에스프레소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과 농부의 정성이 필요하듯, 오랫동안 가꾸어 온 그의 마음은 사람을 향한 깊고 따뜻한 보살핌의 감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되려면 모든 과정이 중요하듯, 따뜻한 말 한마디도 그가 걸어온 삶, 관계 속에서 쌓아온 마음, 그리고 상대를 향한 배려가 응축된 결과일 것이다.
황금빛 갈색의 크레마, 깊고 풍부한 단맛을 지닌 진한 에스프레소와 닮아 있는 그의 말.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말을 남기고 있을까?”
“나의 말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진하고 따뜻한 온기를 지닌 에스프레소와 닮아 있을까?”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