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병법(兵法)과 실전(實戰)

  • 등록 2025.04.24 10: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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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 전국시대 말(BC260), 즉,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얼마 전 진(秦)나라는 조나라를 침공했다. 조나라의 기둥인 인상여는 늙어 병들었고 명장인 조사(趙奢)는 죽었고 염파만 남아서 조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백전노장인 염파는 적의 어떠한 술책에도 동요하지 않고 굳게 수비만 했다. 진나라의 장수는 역사에 유명한 ‘백기’라는 장수였으나 염파의 수비를 뚫을 수가 없었다. 난공불락 조나라의 수비에 점점 힘이 빠지고 지쳐만 갔다. 그래서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염파는 겁쟁이라 겁낼 것이 없지만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수가 된다면 큰일이다. 그는 병서를 많이 읽어 병법에 정통한 사람이다.”

 

 

조나라의 혜문왕은 그 소문을 듣고 인상여가 “조괄이 똑똑하기는 하나 경험이 없습니다. 이는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고 연주하는 것처럼 현실에선 응용할 줄 모르니 염파 장군을 그대로 두십시오. 아군의 2배나 되는 진나라 군세를 보면 잘 지키는 게 이기는 일입니다.”하며 간곡히 말렸건만 염파를 직위해제하고 조사를 새로운 장수로 기용했다. 그러자 조사의 미망인이자 조괄의 어머니도 왕에게 그 처사가 부당함을 눈물로 간언을 했다.

“제 자식 놈은 책만 몇 권 읽었을 뿐으로 그 아비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사실 조사의 아들인 조괄은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부친인 조사마저도 병법에 대한 토론으로 아들을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조정에 천거하지 않았다. 아내가 이를 원망하자 조사는 아들이 만약 중책을 맡게 된다면 반드시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니 그를 절대로 기용해서는 안 된다고 유언을 했었다.

 

그러나 혜문왕은 전쟁에 패하더라도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를 전쟁터로 보냈고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조나라 군대는 백기가 이끄는 진나라에 대패를 한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이 이론만 믿고 무리한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병사를 무려 45만이나 죽였는데 그 중 40만은 산 채로 묻어버렸다. 중국 역사상 단일 전투로 죽은 숫자로는 단연 최고다. 고대인들의 역사 기술에서 숫자는 과장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실로 엄청난 숫자이며 이로 인해 조나라의 국운은 기울고 말았다. 역사에 ‘장평대전’이라고 기록된 전쟁이며 여기에서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뜻의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혜문왕의 그릇된 판단과 장수를 잘못 만난 죄로 수많은 병사들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성서를 많이 읽는다고 훌륭한 신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병법서를 많이 읽었다고 훌륭한 장수가 되지는 않는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 보건데 한 국가나 조직의 내리막길에는 항상 자신감에 넘치는 지도자, 자기 과신에 빠진 지도자, 그래서 주위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었다.

 

논리(論理)에 보면 ‘일반화(一般化)의 오류(誤謬)’라는 것이 있다. 어떤 특수한 상황이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을 모든 상황 모든 경우에 적용하려는 오류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시도로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아이들도 변한다. 대학의 교육학 시간에 혹은 교육학 서적이나 논문에서 설사 어떤 이론을 습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통계 수치일 뿐으로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될 리는 만무하다. 수영 강사나 테니스 코치가 가르쳐 주는 것은 기본 원리이다. 선수가 되거나 실전에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 적응과 자신만의 체득과 연마가 있어야만 한다.

 

아이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들이고 이에 더하여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간단한 요리를 하더라도 요리의 성격에 따라 약한 불에서 오래 익혀야 하는 것이 있고 센 불에서 속히 익혀야 하는 것이 있듯이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데도 오래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속전속결해야 할 때를 놓쳐 낭패를 보는 때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론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미숙한 행위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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