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검색과 사색(思索)

  • 등록 2025.05.12 18: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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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특별하지 않다. 단지 ‘무사유(無思惟)'할 뿐이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악명 높았던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다. 그는 600백만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 처형을 한 책임자였고 독일 패망과 동시에 아르헨티나로 도망하여 15년을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살았지만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끈질긴 추적과 장남의 철없는 누설 끝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재판과정을 생중계했고 전 세계인이 숨을 죽이며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다.

 

한편 이 소식을 듣고 대학교수였던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재판 과정을 취재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의 책에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덧붙여서 펴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유대인 600만 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앞장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성인 남성처럼 보였다. 이웃과 가족에게 친절했으며, 풍채 또한 상상과는 달리 왜소한 편이었다. 그는 아이에게는 바람직한 아버지였고, 아내에게는 바람직한 남편이었으며, 아웃에게는 바람직한 형이었고, 친구에게는 바람직한 동료였다.

 

정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재판 직전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으며 한 정신과 의사는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히만은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반유대주의에 열광했거나 세뇌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실제로도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유대인을 학살하는 행위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했다. 유럽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최종 책임자였으며, 해당 보직을 맡은 기간 내내 유럽 전역의 수용소와 학살 장소를 돌아다니며 최선을 다 해 ‘업무’를 이끌었다. 심지어 그의 상관이었던 하인리히 뮐러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우리에게 50명의 아이히만이 있었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선’과 ‘악’을 상호 대치되며, 물과 기름 혹은 빛과 어둠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학살 행위가 유태인에 대한 증오 혹은 파괴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욕망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에 놀라며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행위 또한 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악이란 특별히 악한 존재 혹은 악한 무언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무사유’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모르고 산다. 깊게 고민을 하지 않거나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아돌프 히틀러'나 그 외 어떤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은 끝내 항변했다. 그러나 검사는 “명령이 잘못되고 불법적인 경우에는,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 것 또한 불법적인 행위로 성립된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어떠한 후회나 반성 없이 교수형을 맞이했고 사후에 홀로코스트에 상응하는 보복으로 불태워져 바다에 뿌려졌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은 빠르고 정확해졌다. 그러나 더욱 조급하고 여유가 없어졌다. 더더구나 우리의 삶에서 사유가 없어졌다. 우리 아이들은 검색은 잘 하지만 사색할 줄은 모른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사색의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면 사바나의 누 떼처럼 멈출 수 없는 힘에 떠밀려 불확실성을 향해 무작정 달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악은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한나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중-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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