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부끄러움

  • 등록 2025.06.18 07:50:38
크게보기

내가 시인 윤동주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시 저변에 흐르는 ‘부끄러움’이라는 정서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하던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결 같은 미세한 가책에도 괴로워했고 현실은 일제 강점기이고 암울하기만 한데 자신의 시가 너무 쉽게 씌어 진다고 부끄러워한다. 그에게는 명월을 짖는 밤 개 소리마저도 자신을 질타하고 꾸짖는 소리로 들린다. 그는 도대체 무슨 과거가 있길래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다지도 자신을 부끄러워할까. 일제(日帝)에 빌붙어 정작 부끄러운 짓을 한 자들은 작위(爵位)를 받고 부(富)를 축적하는데 그는 조국이 처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신에게 분노와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그의 시 속에는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미움, 가엾음, 그리움의 감정들이 교차한다. 그가 얼마나 내면 깊숙이 성찰과 반성을 거듭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맹자는 생전에 ‘군자에게 있는 세 가지 즐거움’, 즉 인생삼락(人生三樂)을 말하면서 두 번째 즐거움으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을 말했다. 맹자는 또 사람의 본성 네 가지를 말하는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하고 있는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면서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라고 덧붙였다. 또 '수오지심은 의로움의 시작이다[羞惡之心 義之端也(수오지심 의지단야)]'라고 하여 사덕(四德) 중 하나인 의(義)가 수오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라거나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하는데 전자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고 후자는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지녔다는 뜻이니 모두 맹자의 주장과 상통한다고 보겠다. 부끄러운 언행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부끄러움을 오롯이 옆 사람의 몫이 된다.

 

세상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부끄러운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이 한 일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부류이다.

후자를 또 나누어 보면 하나는 무지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부류인데 성서는 그를 가리켜 화인(火印) 맞은 양심이라고 한다(성경 디모데전서 4장 2절). 무지한 사람은 배워서 깨우칠 기회가 있거니와 화인 맞은 양심은 희망이 없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은 몇 안 된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있다. 사람을 태운 승합차량이 강물에 빠졌다, 누구를 먼저 건져야 할까? 정답은 어린이도 임산부도 성직자도 아닌 ‘정치인’이다. 이유는 ‘강물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슬픈 현실이다. 인류는 왜 정치인을 혐오할까? 이념 등 추구하는 바가 자신과 달라서와 같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고 신뢰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에 나와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입장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치인들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점점 부끄러움을 잃어간다. CCTV는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사각지대에는 여전히 쓰레기 불법 투기가 성행하고 도난과 훼손이 끊이질 않는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악화일로를 치닫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고 어려서 부터 페어플레이 보다 이기기만을 가르친 결과이다.

 

 

밥을 지을 때 흰 쌀에 보리쌀을 한 줌만 넣었는데도 지어진 밥을 보면 보리쌀이 절반은 되어 보인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 많아 보이는 이유와 같다. 사실은 선한 사람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악인들은 눈에 띄기 때문에 더 많아 보인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자. 아직은 살 만한 세상 이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세상을 지키는 길이라고 가르치자.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대한민국교육신문 webmaster@kedupress.com
Copyright @대한민국교육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