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망가진 다리

  • 등록 2025.06.23 18: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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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인조-효종)의 문신이었던 유계는 함경도로 귀양을 갔다가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민정중이라는 젊은 선비를 만났다. 둘은 목적지가 같은 방향이니 말동무나 하자며 동행을 했고 얼마쯤 가다가 해는 이미 저물고 날이 어두워졌는데 유계와 민정중은 냇물을 건너게 되었고 부실한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민정중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물에서 나온 민정중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를 헐어내었다. “아니 이보게 선비, 어째서 다리를 헐어버린단 말인가!” “예, 저는 비록 다치지 않았지만 날도 어둡고 뒤따라오는 과객들이 이 다리로 인해 다칠 것이 분명하니 이것을 헐어 버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유계는 민정중의 사려 깊음에 감탄하고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과연 유계의 생각대로 민정중은 훗날 좌의정이 되었다.

 

‘나는 이미 건넜으니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낡은 제도나 모순되고 불합리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억울함을 맛보았으니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은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어설픈 다리를 헐어버려야 불필요한 부상을 미연에 막을 수 있듯이 낡은 제도나 규정도 과감히 헐어내야 한다. 개혁 혹은 혁신이라는 것은 반드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서가 아니라 낡은 것을 없애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개혁은 결코 쉽지 않다. 그 까닭은 아무런 생각 없이 살거나 알았다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기 때문이다.

 

어떤 장교가 새로운 부대에 부임하여 순찰을 하다 보니 한 병사가 벤치 옆에 보초를 서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벤치를 지키느냐고 묻자 자신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부대원 누구에게 물어도 자신이 입대할 때도 거기 보초가 있었다는 것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장교는 전임자 그 전임자를 추적한 끝에 어렵사리 그 까닭을 밝혀냈다. 여러 해 전 한 장교가 그 벤치에 페인트를 칠했다. 그리고 누군가 실수로 거기 앉지 않도록 보초를 세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장교는 전근을 갔고 후임자는 그 이유를 모른 채 거기 보초를 세웠고 그 부대의 관습이 되었더라는 것이다. 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발전을 저해하는 커다란 장애는 합리적인 이유나 능률과 상관없이 관습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고려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요 정치가였던 이규보(1168-1241) 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옥설(理屋說)’이라는 글이 있다. 지붕 고치는 이야기다. 이 글은 지극히 평범하고 짧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으며 길이 간직해야할 교훈을 주고 있다.

 

『행랑채가 퇴락하여 지탱할 수 없게끔 된 것이 세 칸이었다. 나는 마지못하여 이를 모두 수리하였다. 두 칸은 앞서 장마에 비가 샌 지 오래되었으나,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망설이다가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고, 나머지 한 칸은 비를 한 번 맞고 샜던 것이라 서둘러 기와를 갈았던 것이다. 그래서 수리하려고 본즉 비가 샌 지 오래된 것은 그 서까래, 추녀, 기둥, 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 쓰게 되었던 까닭으로 수리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았던 한 칸의 재목들은 완전하게 하여 다시 쓸 수 있었던 까닭으로 그 비용이 많지 않았다.

 

나는 이에 느낀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 자신이 나쁘게 되는 것이 마치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되는 것과 같으며, 잘못을 알고 고치기를 꺼리지 않으면 해(害)를 받지 않고 다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저 집의 재목처럼 말끔하게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도 이와 같다. 백성을 좀먹는 무리들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그런 연후에 급히 바로잡으려 하면 이미 썩어 버린 재목처럼 때는 늦은 것이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필자는 행랑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옳지 않은 행실이나 관습, 제도와 같은 것에서부터 개인에서부터 국가나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폐단을 고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각 없이 지키고 있는 의자는 없는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 폐단은 없는가?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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