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요한 용무가 있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오래 가는데도 받지 않았다. ‘사정이 있나보다 기다리면 전화 해 주겠지’하며 기다렸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또 걸었으나 역시 받지를 않았고 대꾸도 없었다. 다음 날도 그랬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사정이 있나보다 했다가 걱정이 되었다가 슬슬 화가 났다. ‘문자라도 하나 보내주든지...뭔가 설명이 있어야 할 텐데....뭔가 오해가 있나?, 아니, 자기는 잘 나가는 사람이고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벼라 별 생각이 나면서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퍼부을까? 돌려서 내 섭섭함을 알아채게 말을 할까?’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더 지났고 우연히 다른 이를 통해 그이는 몸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생겨 서울의 대형 병원에 입원하여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전갈을 받았다. 전화도 할 수 없고 면회도 제한된 상태라고 한다. 충격과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이에게 만약 언짢은 문자를 보냈더라면 어쨌을까! 모골이 송연했다.
오해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심각할 수도 있다. 미당 서정주 시 시 ‘질마재 신화’,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 집’ 등이 그렇듯이 오해는 오래전부터 타인과 자신의 삶을 망치기도 하며 설화나 문학의 모티브가 되어 왔다. 지극히 사소하면서도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치기도 하고 국가 간의 전쟁을 초래하기도 하는 등 경우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오해이다. 인류의 삶에서 오해만 없었어도 인류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학창시절 영어를 공부할 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to see is to believe)란 유명한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더라도 언제나 진실을 보고 듣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 오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섣부른 판단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리자.
한 사람이 차를 몰고 산굽이를 돌아가는 데 맞은편에서 오던 차에서 여성 운전자가 차문을 내리고 “돼지!”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돼지’라는 소리를 들은 그는 화가 나서 “뭐가 어째! 이 암퇘지야!” 라고 외쳤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비탈에서 돼지 떼가 몰려 내려와 차량과 충돌하는 바람에 차는 전복이 되었다. 여성 운전자는 그 위급한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때때로 우리의 호의가 상대방에게 오해되기도 하고 우리가 상대의 호의를 오해하기도 한다. 사소한 오해는 잠시 후 풀리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 평생을 가기도 한다. 삼국지에서도 도망 중이던 조조는 오해 때문에 은인 부부를 죽이고 만다.
한편 오해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화가 나면 꼬리를 흔든다. 둘이 친해지기 어려운 이유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탈무드는 여러 경우에 있어서 이를테면 집들이에 모두 초청을 받았는데 자신만 제외 되었다든지 무거운 짐을 들고 길에 서 있는데 지인의 차가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든지 하는 경우에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하며 ‘여러 경우를 상상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나쁜 쪽으로만 생각을 전개한다.
한 여자가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앞 동과의 거리가 가까워 이삿짐을 나르면서 보니 창문 너머로 앞집 여자가 단정히 거실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거실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짐 정리가 끝나면 차라도 마시면서 사귀고 싶었다. 그러나 분주하게 며칠이 지났고 앞집 여자 생각을 잊은 채 몇 달이 지나 겨울이 오고 어느 날 문득 앞집을 보니 창문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게으른 여자로군, 사귀지 않기를 잘 한 것 같다.‘생각했다. 이윽고 봄이 오고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그런데 우아한 앞집 여자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자신의 창문이 더러웠던 것이다.
내 창을 먼저 닦고 이웃을 보자.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