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칼럼 - 족제비의 절개

  • 등록 2025.08.27 18: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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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의 자존심』

 

초등학교 시절에는 붓을 쓸 일이 많았다. 미술 시간에 붓글씨도 쓰고 수채화도 그리고 하는 시간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술시간이 결코 기다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괴로움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미술에 흥미가 없거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적 능력은 안 되는데 준비물이 너무 많았다. 깜빡 잊는 바람에 또는 살 돈이 없어서 준비물을 못 가져가 혼나던 기억이 많다. 그것마저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지만 어렵게 장만한 도구를 잃어버리고 다시 사달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다가오는 미술시간을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속에서 기다리던 시간들이 많았다.

 

나는 싸구려 개털로 만든 붓도 없어 풀이 죽어 있는데 족제비 털로 만든 붓으로 위용을 뽐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이 왜 특별한지를 그 때는 몰랐으나 훗날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좋아 개털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족제비는 자신의 털을 몹시 자랑으로 여겨 늘 털을 가꾸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언젠가 수능 모의고사에 ‘족제비의 자존심’이라는 지문이 있었는데 요지인즉 족제비는 목숨보다 자신의 털을 더 아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적에게 쫓겨 궁지에 몰렸을 때도 앞에 있는 시궁창에 뛰어들어 목숨을 부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으며 문제 풀이 보다 족제비에 의해 참패당한 내 모습에 새삼 놀랐다. ‘나는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야할 가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잡히는 것이 없어 부끄러웠다.

 

우리 선조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을 즐겨 썼다. 어떤 굴욕과 고난을 당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살기 위하여는 어떤 수치나 구차함도 때로는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인가?

 

한편 이희승의 ‘딸깍발이’라는 수필에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 는 속담이 나온다.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신고 날이 좋은 날은 짚신을 신어야 하는데 가난하여 좋고 궂은 날씨에 상관없이 나막신만을 신기 때문에 그가 걸을 때마다 ‘딸깍’ 딸깍‘ 소리를 내는 남산골샌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록 얼어 죽을지언정 남들이 피우는 모닥불 곁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동냥하지 않겠다는 오기요 가난하지만 자존심 있는 선비정신을 말하고 있다. 그는 엄동에 냉골에 웅크리고 앉아 이를 딱딱 마주치며 “추위란 놈아 내년 봄에 보자.”고 오기를 박는다. 그까짓 털을 아끼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족제비, 체면을 좀 구기면 어떻다고 추위를 겪는 선비를 용렬하다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그 자존심 앞에 숙연해진다.

 

초나라에 정치가요 문장가였던 굴원(BC343?-BC278?)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조정에서 쫓겨나 쓸쓸히 강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부가 다가와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굴원은 ’나는 홀로 깨끗한데 세상이 너무 더러워 쫓겨났노라‘고 대답하자 어부는 세상이 혼탁하면 혼탁한대로 살면 되지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말한다. 굴원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 하오. 어찌 몸의 깨끗함으로써 사물의 더러움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수의 물결로 가서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깨끗하고 깨끗한 순백으로서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했다. 그러자 어부는 떠나고 굴원은 강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많은 행사들을 하며 굴원이 죽은 날을 기린다.

 

굴원의 강직함을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혼탁한 흙탕물에 자신을 더럽히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한 족제비는 굴원의 자존심을 닮았을까? 절개가 사라진 세상에서 눈앞의 이익과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하여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몸을 빼지 못하고 함께 몰락해 가는 사람들을 보며 족제비의 절개를 생각한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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