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 등록 2025.11.08 00: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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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감사를 연습하다


5년 전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찬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 웃을 때 이상해. 거울 좀 봐요." 아들이 말했다.

 

"그래?" 거울 앞에서 웃음을 지어본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표정, 한쪽 입 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충 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했다. 회사에 일찍 도착한 나는 카페에 잠시 들러 커피 한잔을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여유로운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빨대로 커피 한 모금 마시는데 이상하게 자꾸 옆으로 흘러내렸다. 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하러 갔다.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음식은 흘러내렸고, 거울을 보니 나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어떻게 병원을 찾아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귓가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다만 내 손에 쥐어진 많은 약 봉투만이 책상 위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6개월의 시간. 하루하루가 작은 전쟁이었다.

 

물을 마시려 하면 흘러내렸고, 밥을 먹으려 하면 한쪽 입에서 음식이 새어 나왔다. 웃고 싶어도 얼굴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말을 할 때마다 발음이 어눌해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내 얼굴과 마주해야 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양치질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출근길에 동료에게 인사를 건네고, 점심 약속을 잡는 것. 이 모든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들을 잃고 나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6개월 후, 돌아온 일상.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고,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이 일상을 절대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매일 감사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요즘, 또다시 불평이 쌓여간다. 감사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평범한 일상인데도. 그때의 절실함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 것이었을까.

 

그런 내가 때로는 밉다.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는지, 얼마나 쉽게 감사를 잊어버리는지. 치료받던 6개월 동안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들을 다시 누리면서도, 어느새 투덜대고 있는 내 모습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고, 지금의 나에게 화가 난다.

 

그래서 오늘, 다시 기억하려 한다.

 

최신 신경과학 연구들은 감사가 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를 느낄 때 뇌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면역 체계를 강화하며, 심지어 혈압을 낮추고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 내가 겪었던 그 일도 결국 스트레스, 면역력 저하, 수면 부족이 원인이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감사는 우리 뇌를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재훈련시킨다. 마치 근육을 단련하듯, 감사의 습관은 우리 뇌의 신경 회로를 바꿔놓는다. 감사는 일회성 깨달음이 아니라, 매일 연습해야 하는 습관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적응의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오늘 눈을 뜨는 것, 물을 마실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사실은 기적이라는 것을.

 

5년 전, 입이 마비되어 밥 한 숟가락 먹기 힘들었던 그때의 나를 잊지 않으려 한다. 감사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뇌를, 몸을, 그리고 삶을 바꾼다.

 

오늘도 나는 다시 선택한다. 감사하기를.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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