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後悔)

  • 등록 2026.04.11 15: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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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사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편이 아니다. 늘 쫓기듯 조바심을 낸다. 일찍 일어날 일이 있어 알람을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어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번을 일어나 시계를 보다가 결국에는 일어나 알람을 해제한다. 강박(强迫)증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름 시간을 충분히 계산하였으나 행여 차를 놓칠 새라 뜨거운 냄비 위의 개미처럼 안절부절 하며 용산 역에 도착하니 출발 시간이 30여 분이나 남았다.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몰려왔다. 30분이라도 더 재울 걸,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일 걸, 좀 더 놀아줄 걸, 한 번 더 안아줄 걸.....

 

딸아이에게 갔다가 목요일에 내려가야 하는데 ‘내일 줄장이 있어 새벽에 나가야 하니 손자를 유지원에 데려다 주고 내려가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예매해 놓은 ktx 표를 물리고 금요일 표를 사려고 보니 주말이라 모든 시간대가 전부 매진이 되고 겨우 9시 44분차만 그것도 역방향 좌석 두 개만 남았다. 일단 예매를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든 동선(動線)을 계산해 보니 서둘러야 했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빨리 깨워야 하고 씻기고 먹이고 택시를 타고 유치원으로 전철역으로 ktx 타는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택시는 잘 잡힐까? 교통 체증은 없을까? 전철은 잘 연결이 될까? 걱정이 꼬리를 문다.

 

아이는 침대에서부터 태업(怠業)을 시작한다. 비몽사몽 하는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눈곱만 떼고 식탁에 앉혔으나 입을 열지도 않고 어렵게 들어간 음식물은 삼켜지지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우유 한 잔을 먹이고 옷을 입히는 데도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짓가랑이 하나 꿰는데 5분, 양말 한쪽 신는데 5분...... 평소에 하지도 않던 정리를 해야 한다고 딴청을 부린다. “상어 게임 한 번만 하면 안 돼?” “TV에서 공룡 잠깐만 보고 가자 응?” “안 돼, 할아버지 시간이 없어-” 평소와 달리 초조한 내 눈치를 보더니 더 이상 흥정은 하지 않았다. 새벽 공기 속에 아이 손을 잡고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탔다. 다행히도 택시는 금방 왔고 도로도 막히지 않았다. 아이 유치원으로 갔다가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작별한 후 서둘러 전철역으로 갔다. 전철은 금방 왔고 용산역에 도착하니 30분이나 남았다.

 

딸아이를 통해 아이 담임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00이가 오늘할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날이라고 너무 슬프다고 하네요. 나 데려다 주고 00역으로 기차 타러 간다며....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데..... 할아버지와 곤충 박물관도 너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 해 주고요.... 할아버지께 우리 00이가 유치원에서 할아버지 이야기도 많이 하고 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세요....” ‘상어 게임이라도 한 번 하고 한 번 더 안아줄 걸....’

 

지금은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께서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평생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아 아이들은 항상 책상에 앉아있는 아빠의 등만 보고 자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도 그랬다. 교직생활 내내 졸업반 담임만 하느라 방학도 일요일도 없이 지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와의 추억은 없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가슴이 아프다. 한 과학자는 연구의 몰두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딸아이가 놀아달라고 떼를 쓰더란다. 지금 바쁘니까 잠시만 나가 놀라고 내보냈는데 아이가 집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연구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자격에 한참 미달한 아빠지만 잘 한 일이 딱 하나 있는데 신혼 초에 학교에 찾아온 상인에게서 카메라를 산 일이다.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쉬지 않던 시절에 한 달 급여를 초과하는 카메라를 샀다 그것이 고가품이라서가 아니라 워낙 박봉이어서 지만 정신 나간 짓을 하고 무척이나 혼이 났다. 그러나 그 카메라는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추억을 남겨 주었다. 그 값으로 추억을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보다 좋았을 순간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산다.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이다.’ 라는 말은 진리이다. 아이가 배는 고프지 않을까? 점심이라도 잘 먹어야 할 텐데 하며 오는 내내 후회를 했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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