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 등록 2026.04.23 12: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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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꺼내지 않은 나


새벽 5시 30분, 언제부터인가 알람이 울리기 전, 같은 시간에 눈은 저절로 떠집니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오늘도 집을 나서 봅니다. 초록 잎이 가득한 길을 따라 달리고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이제는 출근 전 달리기가 제 하루의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은 늘 분주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알람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식사를 준비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서기 바빴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던 날들. 그 시절의 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지표마저 하나, 둘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 저는 문득 이런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직장생활과 육아를 핑계로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들, 그것은 단순히 운동만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 그 모든 것을 저는 오랫동안 미루었던 것입니다.

 

체력을 올리기 위해 이것저것 고민하던 중 가볍게 할 수 있는 걷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걷기는 어느 순간 달리기로 이어졌고,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우연한 기회에 마라톤대회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권유로 신청하게 되었지만, 곧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연습 기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고, 완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인간은 늘 그런 물음 앞에 서 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충분한 준비가 갖춰진 뒤에야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평생 출발선에만 서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이란 도전의 반대말이 아니라, 도전이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저는 결국 가족의 응원에 힘을 내어, 그 불확실함 속으로 한 걸음 내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일 조금씩 달렸습니다. 쉬는 날도 있었지만, 미리 약속한 환경과 동료들의 시선이 저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쉽게 무너지지만, 관계 속에서 다시 설 힘을 얻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 몸으로 배웠습니다.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이른 아침,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출발선 위에 서봅니다. 귓가로 스쳐가는 바람이 저에게 살포시 말을 건넵니다.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마라톤, 저는 첫발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이유는 단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고, 고통이 있으면 그 너머에 반드시 숨 고를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대부분 내리막이 오기 직전, 가장 가파른 오르막 위에 있을 때라는 것을. 그 사실을 저는 달리면서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길가에서 박수를 건네는 사람들의 미소, 나보다 앞서 달리는 선배 마라토너들의 뒷모습. 그 모든 것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10km를 완주했고, 예상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날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진실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쉽게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늘 부족하다고 여겼던 제 모습은, 사실 아직 충분히 꺼내지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한계라고 믿는 것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실은 한 번도 시험해보지 않은 가능성인지 모릅니다.

 

이제 달리기는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달리기 전후의 삶은 확연히 다릅니다. 몸이 바뀌었고, 아침이 바뀌었고,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결국, 달리기는 체력을 기르는 행위가 아니라,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건네는 하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달리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처음부터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저처럼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거리가 아니라 계속 나아가려는 의지일 테니까요.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4월의 푸르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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