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월)

"교장 선생님, 이 향기를 집에 가지고 가고 싶어요."

-질문이 피어나는 장미정원, 아이들의 마음이 자라는 곳-

 

봄 햇살이 꽃잎에 머물다

조용히 바람으로 풀려나는 과일향


어느 봄날 아침, 장미정원에서 한 아이가 장미 향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말했다.

 

"과일 향이 진하게 나요. 이 향기를 담아서 엄마한테 가져가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은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 김춘수는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아이들은 매일 그 시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가 장미를 부르는 순간, 장미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장미는 다시 조용히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고 있었다.

 

에덴정원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장미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백여 그루가 넘는 장미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과 다른 향기를 품고 살아간다.

 

어느 아침, 저학년 한 아이가 정원에서 나를 만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저는 장미예요."

 

너무 귀여워 한참을 마주 웃었다.

 

또 어떤 날은 아이 둘이 봉오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기 봉오리가 너무 귀여워요."

 

"이 봉오리가 크면 이렇게 예뻐지는 거죠?"

 

아이들의 눈에는 작은 꽃봉오리 하나도 생명이었고, 기다림이었고, 미래였다.

 

나는 가끔 장미 전지를 한다.

프랑스 장미, 독일 장미, 영국 장미, 일본 장미들을 다듬다 보면 꽃잎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꽃잎을 줍는다. 운이 좋은 아이는 꽃을 주울 수도 있다.

 

"엄마 드릴 거예요."

 

"집에 가져갈 거예요."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두 손으로 꽃잎을 감싼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가 물었다.

 

"교장 선생님, 전지 언제 하세요?"

 

꽃잎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부모님께 드리고 싶었던 마음.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교육은 거대한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꽃잎 하나를 소중히 품는 작은 손길 속에도 부모를 향한 사랑이 이미 자라고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인성교육은 멀리 있지 않았다.

장미 한 송이, 꽃잎 한 장 속에도 있었다.

 

페스탈로치가 말한 그대로다.

 

"참된 교육은 머리(Kopf)와 가슴(Herz)과 손(Hand)이 함께 자라는 일"이다.

 

꽃잎을 두 손으로 감싸 안는 그 순간, 아이의 머리는 부모를 떠올리고, 가슴은 사랑을 느끼며, 손은 그 사랑을 운반하고 있었다. 가장 작고 가장 완전한 교육의 장면이었다.

 

우리 학교 장미정원에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장미들이 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을 쓴 영국의 문학가.

바람부는 황야를 지나온 문학이

꽃이 되어 피어난 장미^^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동화 작가.

동화속 황금빛 상상이 꽃이 되어

정원에 내려앉은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

 

또 어떤 장미는 과학자의 이름을, 또 어떤 장미는 예술가와 철학자의 이름을 품고 있다.

 

아이들은 묻기 시작한다.

 

"왜 장미 이름이 로알드 달이에요?"

"왜 이 사람 이름을 장미에 붙였어요?"

"그 사람은 어떤 책을 썼어요?"

 

질문이 시작된다. 그리고 질문은 생각을 낳는다.

 

AI 시대. 많은 미래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정답을 가진 자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자가 미래를 이끈다."

 

장미는 질문을 만든다.

 

왜 이 장미와 저 장미는 향이 다를까.

왜 비슷한 향인데 어떤 것은 더 진할까.

왜 꽃 색깔이 다를까.

왜 이름이 다를까.

 

질문은 결국 배움으로 이어진다.

문학으로. 과학으로. 철학으로. 그리고 삶으로.

 

아이들은 장미 이름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작가를 통해 책을 만나고, 책을 통해 인생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생태교육이 인문학으로 이어지고, 인문학이 다시 영성으로 깊어지는 순간이다.

 

장미 향은 언제 가장 진할까. 햇빛이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아침.

온기를 품을수록 장미 향은 깊어진다.

 

문득 생각한다. 사람도 그렇다고.

햇빛의 온기를 담아야 향기가 오래간다.

사랑의 온기를 품어야 사람의 향기가 깊어진다.

 

평생을 장미와 함께 살았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새겼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어느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장미는 모순이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고, 짧게 피지만 영원히 기억되며, 작지만 우주를 품는다.

 

아이들도 그렇다.

작고 연약하지만, 그 작은 손에 우주를 품고 있다.

 

나는 장미 향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말이 고와진다. 눈빛이 따뜻해진다.

정서가 순화된다.

 

꽃의 아름다움 속에는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다.

사랑. 배려. 따뜻함. 그리고 다양성.

 

장미는 모두 다르다.

색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향이 다르다.

하지만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어린이들도 그렇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다.

 

다르기에 아름답다.

 

다르기에 서로 배우고 사랑할 수 있다.

 

배려교육의 철학자 넬 나딩스(Nel Noddings)는 말했다.

 

"교육의 본질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자라는 일이다."

 

다양한 장미가 한 정원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듯, 다양한 아이들이 한 학교에서 서로를 돌보며 자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학교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셨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오늘 우리 교육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학교폭력 예방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친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 품성의 씨앗은 어쩌면 거창한 인성 프로그램보다, 한 송이 장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웃는 아이들의 어깨 위에서 더 잘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유아교육의 아버지 프뢰벨은 자신이 세운 학교에 'Kindergarten'(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믿었다.

 

아이는 식물과 같아서, 햇빛과 바람과 사랑이 있는 정원에서 가장 잘 자란다고.

 

에덴정원도 그러하다.

 

향기를 맡아 보아라.

꽃의 이름을 기억해 보아라.

질문해 보아라.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끝없이 상상해 보아라.

질문과 질문. 생각과 생각.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에 대한 통찰.

바로 그것.

그것이 우리가 장미정원에서 가르치고 배우고 싶은 교육이다.

 

꽃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보자마자 외친다.

와~~~!복숭아다아~~~^^

코를 갖다 대자마자 또 외친다.

와~~복숭아 과일향이다아~~~^^

 

영적인 상상력이 눈과 코와 귀를 지나 마음 깊이 들어온다.

행복이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는 장미 향기를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그 향기가 어쩌면 그 아이의 평생을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정신으로.

서로 다른 친구를 끌어안는 품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보는 영혼으로.

 

장미는 시들지만, 향기는 마음에 남는다.

 

오늘 에덴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장미가 아니다.

 

태강삼육의 아이들이다.

그리고 오늘도 에덴정원에서는

한 송이 장미가 조용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칼럼니스트 박대훈

 

• 현)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 2026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







인물·기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