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월)

‘AI’는 왜 대학 졸업식 축사의 금기어가 되었는가?

우리 사회, 특히 대학에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러분의 미래는 AI와 함께 할 것입니다”라는 말은 졸업식장에서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그런데 학사 일정이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경우 올해 5월, 전국의 대학 졸업식에서는 분위기가 달랐다. 최근 동아일보(2026.5.29.)의 <만화경>에서 신경립 논설위원에 따르면 올해 졸업식에서는 AI를 찬양하던 초청 연사들이 야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애리조나대에서 인공지능(AI) 발전을 컴퓨터에 비유했고, 센트럴 플로리다대에서는 “AI 부상은 차세대 산업혁명”이라는 연설이 그 야유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 졸업생들에게 “축하 인사인지, 해고 통보인지 모르겠다”는 의심과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졸업생들은 생성형 AI 챗GPT가 등장하기 직전 대학에 입학한 첫 AI 세대인 동시에 AI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첫 번째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꿈을 향해 달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졸업하는 지금은 “AI가 너보다 보고서를 빨리 쓴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어떤 학생은 농담처럼 말했다. “학자금 대출은 내가 갚는데, 취업은 챗GPT가 한다.” 언뜻 들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이로써 구직난과 미래 불안에 시달리는 졸업생들 앞에 ‘AI’는 금기어(taboo)가 된 것이다.

 

사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증기기관이 육체노동의 질서를 바꾸었듯, AI는 지식노동의 구조를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문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교육과 노동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의 초중고와 대학까지도 여전히 ‘정답을 빨리 찾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지만, AI는 이미 그 일을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제 교육은 “무엇을 외웠는가”보다 “무엇을 질문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주지하는 것처럼 AI 시대의 인재는 암기형 인간이 아니라 해석형 인간이다. 정답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기업이 원하는 능력은 단순 스펙이 아니다. 공감 능력, 창의성, 협업 능력, 윤리적 판단력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보고서를 작성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어도, 공동체의 방향을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AI 시대, 이에 걸 맞는 교육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첫째, 대학은 전공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공대생은 철학을 배우고, 인문대생은 코딩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 사회는 ‘한 우물형 인재’보다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AI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문학도 위험하지만, 인간 이해가 없는 기술자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둘째, 시험 중심 교육에서 프로젝트 중심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은 정답 맞히는 훈련에는 익숙하지만, 실제 문제 해결 경험은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하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것은 “모범답안 선수”가 아니라 “문제 해결 전문가”다. 이는 실패해 본 경험, 토론해 본 경험, 직접 부딪혀 본 경험이 축적된 사람의 장점이다. 이제 AI 시대의 교실은 과거의 조용한 암기 학습실이 아니라 시끄러운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셋째, 평생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한 번 배운 기술로 평생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 과거에는 “졸업”이 배움의 끝이었다면, 이제는 “업데이트”가 생존의 시작이다. 스마트폰도 업데이트를 안 하면 버벅거리는데,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 100세 시대인 요즘 대학은 20대만의 젊은이들의 공간이 아니라 40대와 60대, 아니 그 앞선 세대도 다시 찾아오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개혁만으로는 그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더불어 노동시장 역시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과거부터 크게 우려한 바와 같이 AI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다면, 새로운 일자리도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 속에서 노동자가 버려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노동의 유연성’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유연성을 곧 해고 자유로 착각하거나 왜곡한다. 진짜 노동 유연성은 사람을 쉽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속에서도 다시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은 직무 재교육에 투자하고, 정부는 전직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는 그 이동의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25~29세의 ‘쉬었음’ 인구는 1년 전보다 3만 1000명이 늘었다고 한다. 이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취업에 따른 “첫 직장 보장”이 아니라 “계속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직업 하나가 평생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여러 번 직업을 바꾸며(혹자는 4~5번이라고 주장하기도 함)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미래의 자기소개서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때 마케팅 전문가였고, 데이터 분석가였다가, 지금은 AI 윤리 컨설턴트로 진화 중인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할지도 모른다.

 

AI 시대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살아남는 법”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 즉, 창조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 질문하는 힘, 상상하는 힘, 타인과 연결되는 힘이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강력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졸업식장에서 청년들이 듣고 싶은 말은 “AI가 미래다”라는 선언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확신과 믿음이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인간이 기술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진정한 교육개혁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다운 인간을 길러내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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