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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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준다

인간은 감정덩어리다

아이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하다. "몰라요. 그냥 짜증나요."

부모는 이 말을 오래 곱씹는다.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다.

그런데 아이는 정말 몰라서 그렇게 말한다. 화가 난 건지, 서운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그저 피곤한 건지. 마음은 분명히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름이 없다.

 

어른도 다르지 않다. 기분이 나쁜 건 알겠는데 왜 그런지는 모를 때가 많다. 마음이 복잡한 건 분명한데 말로 풀어내려 하면 막막해진다. 대부분의 감정은 정리가 안 돼서 힘든 게 아니다. 이름이 붙지 않아서 더 힘들다.

최근 본 드라마에서 한 인물이 이런 말을 한다. 자신에게는 사람마다 감정덩어리로 보인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독서 모임을 운영한다. 그러면서 같은 장면을 자주 본다. 시작할 때 어딘가 굳어 있던 표정이 끝날 즈음이면 한결 풀려 있다. 대단한 책을 읽어서가 아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건져 올리는 문장이 다르다. 누군가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 멈췄어요"라고 말하면, 그 한마디에 자기 마음 한구석을 들여다보게 된다. 모임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막연하던 마음에 이름을 붙여 보게 하는 것. 표정이 풀리는 건 늘 그다음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친 적이 없다. 수학 공식은 가르치면서 지금 네 마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여기서 독서가 일한다. 독서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내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아, 이게 내가 느끼던 거였구나." 그 순간 막연한 불편함이 이해 가능한 상태로 바뀐다. 독서는 감정을 없애 주지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막연한 짜증이 '서운함'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그 감정을 손에 쥐고 바라볼 수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건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 명명'이라 부른다. 화가 치밀 때 "나 지금 화났구나"라고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 뇌의 경보가 한 단계 누그러진다는 연구들이 있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결국 거리를 둔다는 뜻이다. 감정에 휩쓸리는 아이와 자기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아이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자란다.

 

물론 혼자 읽으면 여기서 멈추기 쉽다. 좋은 문장을 만나도 '좋았다'는 감상으로 끝나고, 감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감정은 말해 보고, 들어 보고, 적어 볼 때 비로소 정리된다. 그래서 읽은 것을 한 줄이라도 쓰게 하고, 한마디라도 말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썼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쓰는 일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가장 사적인 방식이다.

 

교사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묻는 것이다. "그 인물은 왜 그랬을까?"가 아니라, "너라면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라고. 책 속 인물의 감정을 더듬는 일은 결국 자기 감정을 더듬는 연습이다.

 

아이에게 책을 쥐여 주는 건 정답을 쥐여 주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을 부를 이름을 쥐여 주는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자기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린 다 감정덩어리니까.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주요경력]

· 수의사
· 작가,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청소년 진로 직업 특강 외 다수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연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참고 링크]

부산 시청 주최 공무원 대상 특강

김해 청소년 진로 멘토링

인천 계양중학교 강연

저자 인터뷰 방송 출연_ONN닥터tv <이 책을 쓴 사람>

진로·커리어 강연 영상

40대 직장인의 80%가 후회하는 것

40대 직장인의 80%가 결국 후회하는 것 | 수의사,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의 작가 박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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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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