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익숙하게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다. 믿었던 부하 직원의 배신에 분노한 사장이 책상 위 서류와 물건을 바닥으로 쓸어버리는 모습, 연인과의 다툼 끝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휴대폰이나 물건을 벽에 내던지는 청년의 모습이다.
화면 속 인물들이 격렬하게 물건을 던지는 모습은 현실적이긴 하지만 더 ‘극적 연출’ 된 모습으로 감정 표현 전달에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들이 시청자,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감정 표출의 당연한 방식으로 은연중에 학습되고 있다.
그들은 왜 물건을 던질까? 분노라는 거대한 감정이 몰려왔을 때,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속에 쌓인 에너지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순식간에 터뜨려 버리는 것이 감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라 착각한다. 그렇다면 화는 무조건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참는 것이 미덕’이라 배우지만, 참기만 하는 화는 마음에 깊은 병을 남긴다. 『참을 만큼 참다가 사소한 일에 터지는 이유』(인현진 저)에서는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고 참기만 할 때, 결국 사소한 자극 하나에도 참아왔던 분노가 마그마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내면의 상처로 남게 된다고 지적한다.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손바닥으로 막아서 누르면 어떻게 될까? 잠시는 물을 가둘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수압이 터져 나간다. 참는 것은 이처럼 수도꼭지를 손으로 억지 눌러 막는 것과 같다. 반면에 손가락 사이에 미세한 틈을 주면 수압이 약해지고 물이 원만하게 흐른다. 이와 같이 화는 억지로 누르고 참아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통로를 만들어 흘려보내야 한다. 화는 ‘참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이다.
동화 『화가 나면 열을 세어봐』(앤드루 뷰캐넌 저)에서는 라일리가 옆 친구로 인해 블록 탑이 무너지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체가 뻣뻣해지고, 얼굴은 뜨겁고,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차오르는 때에 선생님이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 10을 세며 감정의 폭주를 멈추는 지혜를 전해준다. 또한 저자 아르노 슈트로벨은 분노라는 감정을 억지로 압착하여 지우려 하지 말고, 신체가 보내는 분노의 신호를 빠르게 인지하여 유연하게 흐름을 바꾸는 조절의 기술을 강조한다.
화가 나는 것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적·심리적 반응이다. 하지만 그 화를 즉각적인 폭력이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연결하지 않고, ‘열을 세는 시간’만큼의 틈을 만들어 내는 것, 그 잠깐의 자각이 바로 감정 조절의 출발점이다. 열을 세는 동안 감정의 뇌에서 이성의 뇌로 주도권이 넘어가며, 물줄기의 수압을 자연스럽게 낮출 수 있게 된다.
지금 당신의 화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수도꼭지를 손으로 막아둔 채 참다가 언젠가 폭발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타인과 나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물건을 던지며 수압을 터뜨리지는 않는가? 감정은 참을수록 거칠어지고, 조절할수록 유연해진다. 누군가나 무언가로 인해 마음속 수도꼭지가 세차게 틀어진다면, 잠시 손가락 사이의 틈을 열어두듯 깊은 숨을 쉬며 숫자를 세어보자. 이것은 아이들에게만 가르쳐야 할 감정 교육이 아니라 누구나 감정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칼럼니스트 양미현]
○ 교육학박사
○ 김해구지초등학교 교장
○ 저서
<독서의쓸모> 미다스북스, 2024
<진로독서가이드북-초등학교>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24
<하루10분 생각습관 하브루타>, 미다스북스, 2018
○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이음교육연구소장
○ 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집필위원 (2016~현재)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