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 장평면 나지막한 산세와 푸른 자연이 감싸 안은 이 작은 마을의 학교에 최근 전국 교육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특정 학년의 학생 수가 1명에 불과해 폐교 수순을 밟는 듯했던 시골 학교가, 이제는 대도시를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촘촘한 미래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며 대한민국 소규모 학교 혁신의 '대표 모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쟁과 속도전이 치열한 요즘, 장평의 아침은 남다른 온기로 문을 연다. 오전 8시 30분이 되면 교장 선생님부터 모든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이 도서관에 모여 조용히 20분간 책을 읽는다. 사락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에서 본지 기자가 장평 현장을 찾아 교장 선생님, 교무부장 교사와 함께 나눈 깊이 있는 취재 내용과 인터뷰 전문을 종합 정리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는다”… 발로 뛴 ‘학생 유치 영업 행정’
교장이 부임할 당시 학교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다. 이에 교장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탓하며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인근 대형 초등학교(장흥초 등)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학부모들이 모이는 카페와 식당까지 직접 발로 뛰며 ‘밀착형 홍보(영업) 행정’에 나섰다. 당시 학부모들에게 드린 약속은 단 하나,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주인공이 되는 교육을 하겠다”는 진심이었다. 큰 학교에서는 아이가 하나의 '숫자'나 '배경'에 머물기 쉽지만, 장평에서는 모든 교직원이 전교생의 이름, 성향, 가정환경, 정서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며 아이만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한 말뿐이 아니었다. 전교생 국외 체험학습, 교과 연계 AI 교육, 대학 연계 멘토링, 독서 프로그램 등 대도시를뛰어넘는 장평만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교사들이 직접 발로 뛰며 보여준 열정과 책임감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확신과 감동으로 바꾸어놓았다.
장평 교육의 3대 미래 핵심 기둥: 독서 · AI · 해외 체험
장평의 교육과정은 공모교장의 비전 아래 ▲독서 ▲AI 에듀테크 ▲국외 체험학습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로 아이들의 미래 핵심 역량을 4년간 지속적으로 키워내며 ‘장평미래학교’로 명승부수를 던졌다.
① [독서] 매일 아침 전 구성원 독서 & 7월 '나도 노벨 작가' 책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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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아침 20분 독서: 매일 아침 8시 30분, 교장과 교사, 학생 전원이 도서관에 모여 함께 책을 읽는다. 방문객들이 가장 놀라는 장평만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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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노벨 작가 프로젝트: 기말고사가 끝난 7월,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취약 시기를 활용해 전문 작가의 원포인트 지도를 받으며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출판한다. 작가로서의 뿌듯함과 자부심을 경험하는 소중한 인성·지성 통합 프로그램이다.
② [AI 에듀테크] 화면 속 코딩을 넘어선 실전형 '피지컬 컴퓨팅'
과거의 단순 코딩이나 이론 교육에서 벗어나, 생성형 AI와 로봇을 결합한 실전형 에듀테크를 추진 중이다. 전남대·조선대와 4년째 운영 중인 'A+X 융합 캠프'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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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봇 국어스토리텔링: 국어 시간에 심청전을 재해석하고 로봇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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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를 활용한 영어 수업: 영어 시간에 로봇과 상호작용하며 자율주행 원리를 배우고 길 안내 앱 미션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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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의 향상: 자신이 짠 코드가 로봇을 통해 눈앞에서 움직이는 피지컬 컴퓨팅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아이들은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재미있는 표현 도구'로 인식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사고력을 체화하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새로운 교수법을, 학생들에게는 실용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③ [해외 체험] 3년간 수업-체험-발표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교육
지자체 및 동문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3년간 체계적인 '수업-체험-발표' 국외 체험학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본 오사카·교토, 중국 상하이, 연길·백두산 등 다수 지역 추진 및 매년 자료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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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행기를 탈 때는 비행기가 떠오르자 아이들이 함성을 질러 기내에서 쑥스럽기도 했던 귀여운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첫 경험이 아이들의 세계관을 눈부시게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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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가 된 지금은 현지에서 스스로 길을 찾고 음식을 주문하며 당당한 글로벌 인재로 성장했다. 이 우수사례는 주변 지역에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80대 선배들의 ‘내리사랑’과 지역사회가 만든 거대한 사랑의 연결고리
장평중학교 전교생이 매년 무상으로 국외 체험학습을 다녀올 수 있는 배경에는 든든한 동문 선배들과 지역민들의 '내리사랑'이 있다. 교장이 처음 부임했을 때, 80대를 바라보는 제8회 졸업생이자 전직 교수인 선배가 학교를 찾아왔다. 고향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본인이 집필한 자동차 관련 책을 기증했던 그는, 변모해가는 학교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국외 체험학습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즉시 8회 졸업생 연락망을 구축하고 동창들과 함께 매년 200~300만 원씩 발전기금을 기탁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시너지가 되어 각 기수별 동창회와 지역사회 전체로 확대되었고, 매년 약 2,000만 원 규모의 발전기금이 모이는 기적을 이뤄냈다. 80대 선배들의 기탁금은 단순한 장학금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한 거대한 사랑의 연결고리다. 아이들은 매년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동시에, "나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고향 선배들과 지역사회가 있다"는 깊은 정서적 안정감과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선배님들 덕분에 행복하다. 우리도 성인이 되면 기부 문화를 이어나가겠다"며 내리사랑의 가치를 몸소 배우고 있다.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밀착 케어'와 학력·인성의 완성
장평중의 핵심 교육 철학은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밀착 케어"다. 학업적 성취와 정서적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구체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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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안정 및 시민교육: 여러 초등학교 출신과 농촌 유학생들이 모여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는 만큼, 1학년 1학기에는 집단·개별 상담으로 적응을 돕는다. 이후 입학식, 졸업식, 축제, 1박 2일 뒤뜰 야영 등을 학생회가 직접 기획하고 추진하도록 지원하여 자치 능력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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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증진 '용두골 공부방' & '열린도서관': "작은 학교는 공부(학력)가 부족하고 인성만 지도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화·목 방과 후에는 본교 교사가 직접 국어·영어·수학 공부법을 가르치는 ‘용두골 공부방’을 운영한다. 월·수 방과 후에는 자율 학습을 위한 ‘열린도서관’을 밤 9시까지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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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간편식과 사냥유(산양유) 후원: 매일 아침 따뜻한 눈맞춤과 간편식,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며, 지역 동문이 직접 짜 온 신선한 사냥유를 학생들에게 무상 제공하여 성장기 건강을 케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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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계 멘토링: 전남대 사범대 및 조선대 예비 교사들과 줌(Zoom)을 통한 35~40시간 멘토링, 2박 3일 현장 캠프를 운영하며 진로 상담과 공부법을 나누는 든든한 형·누나 멘토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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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혁신 (미래교실·도서관): 예산 5억 원을 확보하여 공간 혁신을 단행했다. 잔디밭과 바로 연결되는 도서관과 미래교실을 학생들과 직접 협의하여 재구조화했다. 아이들은 "내가 낸 아이디어가 반영됐다"며 스스로 학교 시설을 아끼고 관리하는 주인의식을 보이고 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기적을 만든 아이들의 극적 변화
위기를 극복하고 학교가 다시 활기를 띠면서 현장에서는 가슴 벅찬 감동의 순간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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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를 극복하고 모범생이 된 다문화 학생: 신입생 당시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영어 알파벳도 모르고, 공황장애로 인해 체험학습 버스조차 타지 못하던 학생이 있었다. 영어 교사가 매일 아침 5분씩 밀착 파닉스 지도를 실시하자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교우 및 부모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현재 이 학생은 영어 성적 95점 내외를 받는 모범생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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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유하고 학업에 열중하게 된 학생: 부모의 불화로 자해를 시도하며 학업을 완전히 포기했던 학생이 전학을 왔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지극정성 어린 상담과 병원 치료 동행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었고, 현재는 경기도의 고등학교로 진학해 학업에 열중하며 지금도 선생님, 친구들과 반갑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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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주도 축제와 성장 발표회: 2024년에 이어 2025년 축제에서는 수업 결과물, 해외 체험학습, 방과후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여 알차게 발표했다. 학부모와 교사들 모두 대견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전학 올 때만 해도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이, 국외 체험과 AI 캠프 발표를 마친 뒤 당당한 웃음을 되찾을 때 교직원들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학부모들 역시 "아이가 장평중에 가고 나서 학교 가는 것을 너무 행복해하고 성격도 밝아졌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오고 있다.
[인터뷰 Q&A] 장평중학교 교장 & 교무부장 교사
Q. (기자) 교장 선생님께서 가슴에 품고 계신 교육 철학은 무엇입니까?
(교장) “중학교 시절은 우리 인생으로 치면 ‘허리’에 해당합니다. 허리가 튼튼해야 평생을 바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요. 들판의 꽃들도 저마다 피어나는 계절과 색깔이 다 다릅니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기름진 흙을 새로 갈아주고 따뜻한 비료(자양분)를 뿌려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피어나고 싶을 때, 스스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자율성과 주도성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Q. (기자) 교정에 심어진 특별한 나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장) “교정에 학자나무라 불리는 '황금 해어나무' 세 그루를 심었습니다. 장흥 출신의 한강 작가처럼, 우리 장평의 아이들이 대한민국과 세계를 이끌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Q. (기자) 선생님 입장에서 바라본 장평의 조직 문화는 어떠신지요?
(교무부장) “선생님들이 수업과 학생 케어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에서 기획이나 대외 업무 같은 큰 짐을 다 안아주십니다.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교사로서의 자존감과 보람을 크게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Q. (기자) 혁신 학교로서 장평중학교가 앞으로 어떤 학교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며,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교장) “인디언 속담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 학교였습니다. 지역과 마을이 함께 배움을 지원하고, 학교는 미래 역량을 키우는 데 전념한 '작지만 강한 학교'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발전 모델이 될 것입니다.
자연 소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아이들도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힘을 얻길 바랍니다. 장평중이 단순히 '학생 수가 적어 살아남은 학교'가 아니라, "작기에 가능했고, 작아서 더 완벽했던 최고의 미래형 학교"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비록 저는 오는 8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장평중의 성공 모델이 전국의 수많은 소규모 학교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매뉴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한민국교육신문 김범동 기자 kbd@kedupres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