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8 (화)

닫기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어느 해부학자의 숭고한 마지막 수업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Mortui vivos docent).” 이 말은 ​수많은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 입구에 정초(定礎)처럼 새겨진 라틴어 명언이다. 이는 의학이라는 학문이 삶을 위대한 마지막 수업으로 장식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탑임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이 오래된 명언이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해 온전히 실현되는 숭고한 광경을 목격했다.

 

​향년 76세로 별세한 김종중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43년간 해부학자로서 단상에 서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지역사회에서 시신 기증 운동을 이끌어온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마저 온전히 제자들에게 맡겼다. “평생 해부학을 가르쳐 왔으니, 죽어서도 제자의 실습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유언과 함께 자신이 한평생 몸담았던 의대 실습실의 해부용 시신(카다바·Cadaver)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기증은 단순한 신체 기증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과 죽음, 이론과 실천,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마지막 수사학’이자, 오늘날 교육이 상실해 버린 진정한 교육자적 엄숙함과 영혼을 일깨우는 강력한 메시지다.

 

세상의 ​의대생들이 처음 해부학 실습실에 들어설 때 느끼는 감정은 공포와 거부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중압감일 것이다. 그러나 메스를 들고 인체의 구조를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한 서적 속 지식을 넘어선 거대한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피부 아래 숨겨진 복잡한 혈관망, 생전을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을 근육의 결, 그리고 질병과 싸운 흔적들, ​이 수많은 흔적을 통해 학생들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내 앞에 누워있는 이 몸이 한때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이자 자식이었으며,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된 하나의 우주를 살다 간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미국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의 윌리엄 몽고메리(William Montgomery) 교수는 해부학 실습을 가리켜 “의대생이 맞이하는 최초이자 가장 묵직한 환자와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실습실의 기증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언어보다 강렬하게 의학의 본질을 가르친다. 정교한 인체 구조를 통해 인체에 대한 과학적 의문을 해소해 줌과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짊어져야 할 의사의 윤리적 책임을 가슴 깊이 각인시키는 것이다.

 

​김종중 교수의 삶은 바로 이 ‘첫 번째 스승’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실천한 여정이었다. 생전에는 입으로 지식을 전달했고, 사후에는 온몸으로 생명의 엄숙함을 전했다. 지식 전달자에 그치지 않고 스승 자신이 직접 교재가 되는 극적인 순간, 교육은 이론의 영역을 넘어 숭고한 종교의 영역으로 도약하게 된다.

 

잠시 세계 속의 시신 기증의 역사를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근대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을 들 수 있다. 그는 1832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시신 해부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의 일환으로 여겨져 강력한 사회적 금기였으나, 벤담은 미신과 편견을 깨고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기증을 결단했다. 현재 그의 시신은 해부 및 보존 처리를 거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오토 아이콘(Auto-Icon)’으로 전시되어, 사후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보적 지성인으로서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 의학사에서도 이와 같은 거룩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한국 해부학의 기틀을 다진 한의석 가톨릭대 명예교수와 나세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수많은 해부학 선구자들 역시 사후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교실에 기증했다. 한평생 메스를 들고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던 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 메스 아래 누워 제자들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한국 의학 교육의 가장 눈부신 귀감으로 남아있다. ​이들이 남긴 유산은 명확하다. 그것은 진정한 스승은 삶의 순간에만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죽음마저 타인의 성장을 위한 양분으로 내어주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이 도달할 수 있는 헌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장은 어떠한가?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검색하고 인공지능(AI)을 통해 요약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교실은 점수와 스펙을 쌓는 기술을 전수하는 학원화 되어가고 있으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계약적 관계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무엇을 아는가’ 과잉되어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울림은 메말라 버린 것이 지금 교육이 처한 비극적 현실의 단면이다.

 

​이러한 시대에 김종중 교수가 던진 마지막 가르침은 가슴을 울리는 경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동양의 오랜 교육 철학에는 ‘언교(言敎)는 상(相)이요, 신교(身敎)는 귀(貴)하다’라는 말이 있다. 말로 하는 가르침보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평생에 걸친 언교(言敎)를 마친 후, 자신의 몸을 바치는 완벽한 신교(身敎)로 삶을 마감했다. “죽어서도 제자들의 실습을 돕겠다”는 그의 마지막 언약은, 강의실 교단 위에서 외치던 그 어떤 화려한 수사학보다 강렬하게 제자들의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 실습실에 들어서서 스승의 몸을 마주할 제자들이 느낄 전율과 감동, 그리고 그로 인해 가슴 깊이 새겨질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그 어떤 교과서나 시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값진 교육적 자산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거룩한 씨앗이 되고 있다. ​김종중 교수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몸은 이제 수많은 예비 의사들의 손길을 통해 수천, 수만 명의 환자를 살려낼 의술과 인성(人性)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스승은 죽어서 지혜가 되었고, 제자들은 그 지혜를 바탕으로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다시금 되새겨 본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이 문장은 이제 차가운 해부학실의 라틴어 명언이 아니다. 한 평생을 의학과 제자들을 위해 바치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내어준 한 스승의 뜨거운 삶을 통해 완성된 아름다운 교육의 서사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 참된 스승의 길을 보여준 고인의 숭고한 넋 앞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그가 남긴 거룩한 삶의 궤적이 이 시대 메마른 교육 현장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인물·기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