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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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화된 평균’을 넘어 ‘다원적 전문성’의 교실로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 말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에게 더없는 안성맞춤의 진리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누리는 눈부신 경제적 번영과 산업화의 성과는 결국 인과응보라는 원리의 산물이었다. 핵심은 1970~198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고도성장기의 동인이 단연 교육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가 주도 산업화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표준화된 인력을 대규모로 필요로 했다. 성실하게 지식을 암기하고, 정해진 규칙을 정확하게 수행하며, ‘평균 이상의 균일한 역량’을 갖춘 노동력을 빠르게 공급하는 데 우리 교육은 가히 세계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며 국가 발전의 1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했다. 정해진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 일률적인 기준으로 학생들을 나란히 줄 세우는 평가 방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다했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지나고, 개인의 독창적인 적성과 다원적 가치가 존중받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이 단순 암기와 지식 처리를 순식간에 대체하는 대변혁의 시대를 이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 반복 학습을 통한 정답 찾기가 아니다. 이제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맥락을 읽어내는 ‘비판적 분석력’,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정의하는 ‘창의적 사고’, 그리고 복잡한 이슈를 해결하는 ‘다원적 전문성’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입의 핵심 축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여전히 30여 년 전의 낡은 틀에 갇혀 있다. 수능은 수험생에게 개개인의 특성과 흥미에 맞춘 깊이 있는 탐구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수많은 과목을 오차 없이 타파하여 ‘평균 점수’를 높이도록 강제한다.

 

이는 개성의 발현이 아닌, 모든 학생을 단일한 척도로 규격화하는 것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구조다. 단 한 문제의 실수로 등급이 바뀌는 정밀한 상대평가는 아이들에게 사유의 깊이를 가르치기보다 ‘오답을 피하는 시험 기술’만을 숙련시킬 뿐이다. ​OECD 주요 선진국들이 일찍이 객관식 상대평가의 한계를 자각하고 표준화된 시험의 비중을 축소하거나 절대평가 및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교육학자 린드라 달링-해먼드(Linda Darling-Hammond) 교수는 저서 《강력한 학습을 위한 교육(Powerful Learning)》을 통해 “지식 기반 사회에서 단순 암기식 표준화 평가는 아이들의 고차원적 사유 능력을 저하시키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미래 세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규격화된 평균’을 양산하는 공장형 교육을 접고, AI 시대를 주도할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대입과 평가 체제의 근본적인 대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모든 과목을 줄 세우는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을 해체해야 한다. 국어·수학·영어 등 기초 학력 영역은 국가 수준의 최소 학력을 검증하는 절대평가 방식의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스스로 선택한 전공 연계 탐구 영역 중심의 정성적 평가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을 잘하는 ‘평균적 인재’가 아닌, 하나를 깊게 탐구할 줄 아는 ‘특색 있는 인재’를 온전히 담아내고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결과 중심의 5지 선다형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이 직접 문제를 설정하고 글을 쓰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 중심 평가가 일반화되어야 한다. 이를 우리는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 교육청들의 실증적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대구, 제주, 전북 등 시·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시작해 이제는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어 공교육 현장에 도입되는 IB 교육과정은 정해진 답을 찾는 대신, 학생 스스로 주제를 선정해 4,000자 분량의 소논문을 작성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구현해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시험 기술자’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과 논리적 서술을 지휘하는 ‘주체적 연구자’로 변화하는 교육적 성과를 증명해 내고 있다.

 

이제는 AI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 즉, 기초 지식과 습득이 필요한 단계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 및 튜터링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개별 학생의 학습 속도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교실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은 오롯이 비판적 토론, 협동 프로젝트, 융합 연구 등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의 장으로 변모해야 한다.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변화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자, 상수(常數)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것이 과거의 ‘표준화된 노동력’이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은 ‘독창적인 사유를 지닌 개성’이라 할 것이다. 단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자르고 평균이라는 단어 아래 아이들의 천재성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리는 교육은 이제 끝내야 한다. ​교육의 낡은 틀을 깨는 것은 단순히 대입 제도를 바꾸는 정책 수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줄 세우기 대상’에서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독특한 주체’로 바꾸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이어야 한다. 모든 아이가 남의 정답을 복사하는 삶, 문제를 풀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주체적인 질문과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갈 때, 대한민국 공교육은 다시 한번 시대를 선도하는 위대한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이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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