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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서 통찰로: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필자는 EBS 프로그램 “명의”를 즐겨 본다. 이 프로그램은 각 분야 최고의 의사들이 질환과 환자를 대하는 치열한 노력과 최신 치료법을 소개하는 고품격 의학 다큐멘터리다. 단순히 환자의 사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의 연구와 진료 과정을 통해 정확한 의학 정보를 전달하며 국민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한다. 출연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한 분야에서 환자를 진료해 온 전문의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의학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끊임없는 학습이 필수였음을 실감한다. 당시에는 컴퓨터의 종합적인 도움도 제한적이었기에, 환자의 진단과 치료는 주로 의사의 임상 경험과 손끝의 기술에 의존했다. 특히 외과적 수술은 전체 임상 경험에 비해 빈도가 낮아, 수술의 성공 여부는 의사의 숙련도와 경험적 판단에 크게 좌우되었다. 하루 8시간, 한 시간에 1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고 가정하면 20년 동안 약 58만 명의 환자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방대한 임상 경험과 헌신이야말로 ‘명의’라는 칭호를 가능케 한 토대였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문의가 되기까지 평균 10년 이상의 수련 과정과 수십만 건의 임상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혁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AI 기술은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학습해 추론을 수행하며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 방안을 제시한다. 그 데이터의 규모는 명의가 20여 년간 다루어야 할 58만 건의 임상 경험을 훨씬 넘어, 실제로는 수백만에서 수억 건에 이른다. 과거 임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의 경험에 해당하며, AI는 이를 단기간에 모사할 수 있다. 환자의 실시간 진료 데이터를 통해 AI는 질환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치료 방법과 수술 성공률까지 제시한다. 실제로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AI 기반 진단 시스템이 기존 방식보다 정확도를 개선했으며, 일부 상황에서는 전문의 수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수술 로봇 다빈치는 인간의 손 떨림이나 피로를 극복하고 정밀한 수술을 가능하게 한다. 의사의 경력이 깊어질수록 진료 경험과 임상 데이터는 풍부해지지만, 직접 수술을 집도할 때는 신체적 한계로 수술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수술 로봇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며, 정밀한 제어로 수술의 안정성을 높여 환자의 생명을 지킨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 사례와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 수술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최소 침습 수술의 특성상 환자의 회복 기간도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AI가 의료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현실로 만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AI의 영향력은 이제 의료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다. 교육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근간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한 지식을 언제든 컴퓨터와 AI를 통해 즉시 얻을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DB)와 온라인 자료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으며, AI는 이를 정리해 손쉽게 제공한다. 그렇다면 지식 습득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창의성, 그리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OECD가 발표한 Education 2030 보고서에서도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 비판적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자기 주도성과 같은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한 기술적 훈련만으로 길러지지 않으며, 인간의 삶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는 인문학적 성찰과 교육을 통해서만 뿌리내릴 수 있다. 결국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지식을 활용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AI는 인간의 경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사고의 폭을 넓히고 확장하는 도구다. 오늘의 명의는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쌓았다. 하지만 내일의 전문가는 AI가 제공하는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더 넓은 통찰을 얻으며, 창의적인 해답을 모색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과 재창조’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 고유의 관찰력, 통찰력, 창의성, 윤리적 책임감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지식은 언제든 AI가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인간다운 길을 제시하며, 올바른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일은 오직 인류의 몫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는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억에서 통찰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AI 혁신 시대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며, 인류가 함께 짊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칼럼니스트 김종욱 박사

 

“과학기술은 인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 Michigan State University, Ph.D. (in Physics)

○(현) 한국전기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현) The University of Waterloo, MME Adjunct Professor

○(전)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 원장

○(전) 한국전기연구원 전략정책본부장, 시험부원장

○(전) The University of Texas @Austin, Postdoctoral Fellow

○(전) Michigan State University, Visiting Research Associate

○(전) 인제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K-사이언스․테크노미 혁신 없이 미래 없다> 피플파워 2023.03.01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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