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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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나는 어려서 운동에 자질이 없었다. 그래서 체육 시간에도 늘 혼자 놀았다. 편을 갈라 시합을 할라치면 수를 채우기 위해 간혹 합류를 하기는 하였으나 나는 양 팀에서 원하지 않는 선수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방망이 대신 말랑한 고무공을 주먹으로 치는 놀이가 있었다.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었는데 표준어는 ‘찜뿌’이다. 어느 날도 혼자서 노는데 아이들이 불렀다. 주자가 베이스에 꽉 차 있는데 하필 한 아이가 발목을 삐어서 경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투 아웃 상황이었다. 내 뒤에는 강타자가 있다. 걱정이 앞섰다. 점수를 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넘겨주어야 했다.

 

나는 무사히 살아나갔고 뒷 타자는 대량 득점을 해서 우리 편이 이겼다. 그러나 내 공로를 생각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내가 행여 공(功)을 세우려는 욕심으로 만용을 부려 아웃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팀의 승리에 기여 했다는 생각에 나는 만족했다. 더구나 그날의 교훈은 일생의 자산(資産)이 되었다. 내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집단의 유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를 늘 생각하게 되었다. 명예나 안일함 보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먼저 생각하려 했다.

 

성경에는 ‘딤낫 세라’라고 하는 다소 생소한 지명이 나온다.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딱 두 번만 나오기 때문인데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그 땅을 받았다는 것과 훗날 여호수아가 죽어 그 땅에 묻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이 딤낫 세라가 예사롭지 않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호수아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기득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모든 지파가 다 기업을 차지하고 가나안 분배가 마쳐진 후에 자신의 기업을 받는다(수 19:49,50).

 

딤낫 세라의 의미는 ‘열매의 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윤택한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남들이 다 차지하고 남은 땅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남은 분깃”이란 뜻으로 딤낫 세라란 명칭이 주어졌는데 이는 정복한 땅을 제일 먼저 취하는 대신에 자기 백성 중 가장 미천한 자들까지 다 분배받기까지 자기의 요구를 연기한 정복자 여호수아의 고상한 인격과 무아(無我)적 정신의 발로(發露)였다. 여호수아는 자기 몫을 차지하는 데 있어 구성원 모두에게 끝까지 모본을 보였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 자리에 오르자마자 관용차를 바꾸고 관저를 바꾸고 (심지어는 그 일을 위해 수천억을 탕진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투자한 본전을 챙기고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온갖 이권에 개입을 하고 사업비를 부풀려 주머니를 채운다. 뿐만 아니라 요소요소에 낙하산 인사를 단행해 자기 사람들을 채우고 굳건한 기반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위협이 되는 적들을 제거한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황폐해지고 죽어나가는 것은 무고한 백성들이다. 이에 비하면 여호수아는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가?

 

기억에 남는 지인이 있다. 교장 정년을 6개월여 남기고 집무실의 집기를 모두 바꿨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취임을 할 때는 집기들이 너무 낡았으니 바꿔야 한다고 이곳은 내빈들도 많이 오는 곳이고 민원인들도 오는 곳이라 학교의 얼굴이니 하루 빨리 집기들을 바꿔야 한다던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임기도 다 끝나 가는데 후임자가 바꾸게 놔두지 뭐하러 바꾸느냐고 물으니 분명 바꾸기는 해야 하는데 취임 초기나 임기 중간에 그 일을 하면 염불보다 젯밥에 신경 쓴다고 탓할 게 분명하니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단다. 자신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냈지만 보다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었단다. 조병화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원래 내 자리가 아니었다. 빈 의자였다. 나는 거쳐 갈 뿐이다. 이 나라도 이 지구도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잘 간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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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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