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너진 교권과 위태로운 교육 현장을 지키기 위해 창설된 가상의 특별 교육 기관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위 사이다 결말에서 느껴지는 통쾌감 덕분에 드라마 시청률은 높아졌지만, 교육 문제는 해결 과정과 방법도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졌다. 드라마 결말과 상관없이 오늘도 전쟁터와 같은 학교에 출근한다. 교무실 문을 열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교사 ○○○’라는 이름표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는다. 그 이름표는 수시로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지만, 때로는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척박해진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 뒤에 따라오는 무게를 견디다 보면, 어느덧 퇴직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365일 퇴직 대기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정년퇴직한 장정희 선생님의 「존경 따위 넣어둬」는 그런 우리의 고단한 어깨를 가만히 다독인다. 우리의 일과가 그렇듯 이 책의 목차는 1교시로 시작해서 6교시로 마무리된다. 시간표에 맞춰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이어가는 교사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성적과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개성과 재능이라는 씨앗을 숨긴 채 살아가는 학생들, 그 곁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학교의 존재 이유 측면에서는 학생이, 교육 목적의 실행 측면에서는 교사가 답이 될 수 있겠지만, 학교 교육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는 단연 교장이 답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조직의 성패는 리더에게 달려 있다고 하나, 그 리더가 무엇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이는 교장이 학교 교육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학교에 교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는 특정 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의 높다란 단상에 올라 일장 훈시를 늘어놓던 교장의 모습을 기억한다. 일방적인 지시와 훈화가 당연시되던 시절, 교장의 권위는 그 단상의 높이만큼이나 높았다. 그러나 교장 자신이 내세우는 권위보다 학교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권위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나아가 교장이 무거운 권위를 내려놓고, ‘책임 있는 공감’으로 구성원들에게 다가갈 때 학교 교육이 살아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교장이 좋은 학교 만들기는 어려워도 나쁜 학교 만들기는 쉽다.”라는 말을 듣고, 적어도 나쁜 학교 만들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