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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금)

임지윤의 커피 스토리

서툰 자신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이 필요한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네가 이렇게 힘든 아이였어?”

 

너 참,어려운 아이구나."

 

편하게 보고 싶을 때만, 꼭 봐야 할 때만 보면 되는 너였는데,

 

너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하면서 든 생각은 너 참... 쉽지 않은 아이구나.

 

커피가 그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면 바리스타는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고, 포터 필터 안에 담고, 꾹 눌러 에스프레소 머신 버튼 하나 누르면 나오는 에스프레소. 그 에스프레소를 얼음 컵에 담아 건네주면 받아서 마시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아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손님인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메리카노는 카페에서 별생각 없이 주문하는, 만드는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음료였다.

 

주문과 동시에 빠르게 만들어져 나오는 아메리카노를 받아 카페 한 곳에 자리 잡고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즐기면 되는 편한 아이.

 

그런 쉽고 편한 아이를 배워 나중에 내 카페를 만들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커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메리카노, 라떼가 전부인.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부터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리스타 스킬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바리스타 스킬은 에스프레소 추출에 필요한 지식, 기기를 다루는 기초적인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려면 통통한 원두를 먼저 갈아, 가루로 만들어야 하기에 그라인더 작동법을 배우게 된다.

 

정해진 양의 원두가루(도징량)가 정상 추출이 될 수 있도록, 그라인더로 입자를 어느 정도로 갈아야 하는지를 배워나가는 수업이다. 주문해서 마실 땐 편했는데, 배워보니 과정이 꽤 복잡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지난날, 고민 없이 말했었던 이 말이 바리스타가 되어 듣고 보니 쉽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일단 낯선 머신, 버튼들은 너무 많았다. 포비아[phobia]까지는 아니지만 기계 울렁증을 앓고 있는 나에게 머신의 열기와 버튼들은 친절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적성과 소질을 저울질하며 복잡한 작업 순서를 빠뜨리지 않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추출하기 위해 필요한 동작을 외우느라 머릿속은 야단법석을 떠는 듯했다.

 

몇 시간을 연습하고 힘 풀린 다리로 땅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올라오는 감정의 발자국들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1) 원두를 그라인딩 하고, 포터 필터 바스켓에 원두가루 정량을 도징하고,  2) 레벨링을 하고, 3) 탬핑을 하고, 바스켓 사이드에 묻은 원두가루 털어내 머신에 장착하고, 4) 추출 버튼을 눌러 정상 추출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

 

 

지금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마음과 손이 움직여지지만, 스스로에게 잘할 수 있다는 위로를 끊임없이 건네야만 했었던 그날, 나는 잊지 못한다.

 

한 여름 태양 아래 버틸 힘없이 한없이 작아지며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커피를 배워보겠다는 결의에 찼던 마음이 친절하지 않은 머신의 열기에 맥없이 두 손을 들 뻔했음을.

 

요란한 그라인더 소리만큼이나 이런저런 생각에 시끄러웠던 마음을.

 

무거운 발도장을 찍으며 집으로 향했던 그날의 나에게 오늘의 나는 쉽고 편한 아이, 얼음 가득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쥐어주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맥없이 주저앉지 않아서,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워.”

 

다음 날 다시 머신 앞에 선 너는 에스프레소의 열기만 이겨 낸 것이 아니야.”

 

그날은 인생의 무수한 날들 중 하루가 아닌 바로 네 인생을 바꾸어놓는 의미 있는 도전과 변화의 첫날이었어.” 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서툴고 의기소침해했던 그날의 내가 몇 년 뒤, 사람들에게 커피를 가르치고, AST(Authorized SCA Trainer, SCA공인트레이너)가 되어 시험을 주관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맥없이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으신가요?

 

굳게 먹었던 결심이 녹아내려 작아지고 무너지려 하나요?

 

오늘 하루가 의미 없는 하루로 느껴지시나요?

 

그런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야단법석 떠는 인생을 사랑스럽게 느끼고 싶은 날이라면 그 날의 저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포기하지 말고 우리 다시 한 번 더 해볼까요?

 

몇 년 뒤, 지금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아메리카노의 유래를 아시나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초반을 보면 독일과 미국의 커피를 마시는 차이가 나옵니다.  미국의 낯선 길에서 여행 짐과 함께 남편에게서 버려진 문치그슈테트너 부인과 노란 보온병.  그 길을 지나던 살(바그다드 카페 주인의 남편)이 노란 보온병을 주워 카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노란 보온병에 담겨 있던 커피를 바그다드 카페에 온 두 명의 남성이 마시게 됩니다. 같은 커피를 마시고 난 두 남성의 반응은 너무나 확연히 달랐습니다.  부인을 버린 독일인 남편은 커피를 마시고 맛있다고 말하는데 할리우드 영화 간판을 그리던 콕스는 독약을 줬냐며 삼키지 못하고 뱉습니다. 그런 콕스에게 카페 직원은 커피가 들어있는 머그잔에 물을 부어 다시 건넵니다. 그러자 콕스는 그제야 맛있다고 합니다물을 부은 커피가 갈색 물 같다는 독일과 진한 커피는 독약이라 느끼는 미국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미국인들이 연한 커피인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계기는 18세기 보스턴 차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동인도 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고 이 회사를 거치지 않고 수입된 차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차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홍자를 즐겨마시던 미국인들은 반발을 하게 되고 17731216일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선박을 습격해 수백 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 사람들은 홍차 대신 커피에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는 것이 애국적인 행동으로 여겼고 이로 인해 아메리카노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