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이 혈액을 맑게 만든다 입사한 지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에게도 퇴직이라는 단어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직장이란 울타리 안에 있는 동안은 느끼지 못할 듯한 감정, 불현듯 그날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맞이할까 하는 두려움에 나는 때로 눈을 감는다. 마치 데자뷔처럼 자주 떠오르는 이 불안감의 시작은 어쩌면 인생 후반전 준비가 덜 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50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듯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지 묻고 싶다. 내 경우, 은퇴까지 남은 시간, 대충 10년이 남은 듯하다.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내가 느끼는 은퇴라는 시간의 길이와 다름을 느끼는 이유를 나의 부덕에서 찾을 때면 나는 나를 잃곤 한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하여 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바로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낮에는 직장인으로서, 저녁에는 주부와 엄마로서 1인 3역 이상을 해야하는 처지의 나에게 이런 시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한가지 길은 바로 수면을 줄여보는 일이었다. 하루 24시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 (present)이지만, 나는 그 선물을 충분히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반문한다. 그리
매일 10분, 이것만으로도 하지정맥이 해결된다고? 간호사라는 직업은 서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나 역시 채혈 간호사로 근무할 때 헌혈센터를 종종걸음으로 다니다 보면 퇴근할 땐 다리가 붓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면 묵직한 통증이 더욱 심해진다.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던 어느 여름날,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하지정맥류(下肢靜脈瘤)는 다리의 정맥 내 판막 이상으로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포함하여 하지의 표재정맥이 비정상적으로 꼬불꼬불 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질환이다. 이 수술을 받은 후 나는 혈액순환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바쁜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그때의 결심은 멀어져 가고 일상 속에서 운동은 그저 작심삼일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혈액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한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 벽은 두꺼워지고, 탄력을 잃어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손발은 차가워지고, 기억력 저하, 만성 피로, 피부 노화 등 혈액순환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갱년기나 노화로
나의 감정과 피의 흐름 유난히 퇴근길이 피곤할 때가 있다. 평소에 흘려 들었을 말이라도 그럴 땐 툭 던지는 어머님의 말 한마디가 내 안에 비수로 박힐 때가 있다. 나쁜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그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생각은 멈춘다.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보지만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이미 몸 안의 혈액의 흐름도 순식간에 변함을 느낀다. 혈류가 빠르게 돌며 심장은 두근거리고, 얼굴은 욹으락 붉으락 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경우가 있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친구가 많이 서운했다고 뒤늦게서야 말해줘서 당황한 적 말이다. 그럼 나는 말 한다. “아니 그냥 한 말인데, 뭘 그런 일로 그래?" 라며 그의 감정을 종종 무시하기도 한다. 마치 상대가 예민해서 그런 것이지 난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이렇듯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피가 거꾸로 솟는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등 우리 몸은 감정에 따라 여러 가지 신체적 반응을 나타낸다. 우선 그 감정이 일어나는 진짜 이유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지, 그 뿌리는
나이 들수록, 표정이 말해주는 것들 요즘 나는 거울을 자주 들여다본다. 흔히 나이 들수록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이전보다 좀 더 자주 거울 속 나와 마주하려 한다. 20. 30대에도 그러지 않았던 내가 최근 들어 거울과 가까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족여행을 몇 해 전 일본으로 간 적이 있다. 비가 온종일 내려 그날은 유난히 단체로 움직이는게 불편한 하루였다. 한창 사춘기의 절정이었던 아이들은 가족들과 사진 찍는 걸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사찰 내 걷기를 한 후 찍은 가족사진에는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 또한 표정에서 어색함이 묻어나 사진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함께 여행 중인 다른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며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자세는 무척 자연스러웠고, 표정은 다양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듯한 자유로운 포즈로 사진을 찍는 행복한 표정이 너무 보기 좋게 느껴졌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찍으면 의식적으로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친구가 얘기한 적이 있다. ‘넌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얼음공주 같아, 차가워서
그 말이 더 힘들었어! 우리는 크고 작은 일들과 함께 아파하며, 혹은 견디며 살아간다. 어떤 일은 견딜 만하면서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일은 너무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누군가에게 표현한 것이 혼자서 견딜 만도 못 할 때가 있다. 그건 표현을 했을 때 돌아오는 말 때문이다. 그 말은 위로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제2의 또 다른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첫 번째 상처로도 매우 아프지만, 두 번째 상처에서는 아픔을 떠나 존재감을 잃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살할 생각이나 시도해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런 분석도 나온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나서 힘든 게 아니었어요. 이로 인한 주변 말들과 시선이 죽음으로 몰아간 거 같아요”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주변 말들은 어떤 말들인가? 흔히 있을 수 있는 우리 가정의 모습에서 찾아보겠다. 자녀가 친구와의 문제로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엄마, 나 오늘 수업시간에 친구랑 싸워서 선생님께 혼났어” 이럴 때 부모님들은 불안과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게 너는 왜 수업시간에 싸우고 그러니”라고 말이다. 이럴 때 우
받고만 싶은 나! 받고만 싶은 너! 결혼까지 골인하는 만남은 참 신기합니다. 저도 그렇지요! 숨 쉬어온 공간, 향기 나는 공간, 쉬고 싶었던 공간이 다른 곳에서 자란 사람들끼리 사랑의 호르몬이 나와, 둘이 하나가 되어 결혼까지 이루는 것을 보면 신기하지요, 그러면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결실을 이루게 되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 것만 같은 사랑도 결혼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마득히 잊혀지곤 하죠. 그리고 우리는 하나씩 내가 다 해줄 것만 같은 것을 ‘네가 나를 위해서 해줘?’라는 식으로 바꿔 버리곤 합니다. 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날들이 투정과 비난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흔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지요.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와 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았어요, 이 친구는 1년 전에도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로 힘들어 저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남편과의 문제는 엉킨 실타래처럼 그대로 남아있었지요. 친구의 고민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기도 했어요. ‘내가 이렇게 하면 자기가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혹은 ‘자기가 잘못한 걸 알아야지’ 더 나아가 ‘나 내 탓
침지, 여과 - 숫자와 감각 사이 비율, 조율. 비슷하게도 보이는 이 두 단어는 과연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비율(比率)의 사전적 정의는 ‘한 수량이 다른 수량에 대하여 가지는 비’이다. 즉, 수학적으로 둘 이상 수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반면, 조율(調律)은 ‘어울리도록 음을 고르거나, 균형이 맞도록 상태를 조정하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숨 쉬고 있다. 관계를 유지할 때도, 감정을 표현할 때도, 심지어 혼자 있는 순간에도.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할 때, 우리는 비율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일에 쓸 시간, 밥 먹는 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 각각의 몫을 정해두고 그 안에 나를 끼워 맞춰보지만, 정해진 비율로는 하루가 부족하기도, 채워지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조율이란 과정을 거친다. 생각보다 일이 오래 걸릴 때는 마음의 여유를 조율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공백엔 쉼의 의미를 조율한다. 예상보다 길어진 만남, 지체된 일정 앞에서 우리는 다시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며 나를 맞춰간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비율과 조율은 필요하다. 몇 그램의 원두에 몇 그램의 물을 부을지, 물의 온도는 몇
부족함을 인정하면 협력할수 있다 혹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힘들어 본 적 있으세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 ‘난 없는데’ 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는 조용히 물어보고 싶습니다. 부족함을 바라볼 마음의 공간이 아직 열리지 않은 건 아닌지요? 그 마음조차도 저는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인간이기에 부족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족과 잘못에 대한 행동을 처벌없이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그 잘못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사랑과 이해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우리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꿀 수 있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얼마 전, 딸에게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학교를 잘 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학교를 가기 싫다고 했어요. 눈치를 살피고 마음을 다독이며 들여다보니 요즘 아이들 말로 ‘꼽준다’ 라는 신조어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예전 말로 ‘은따’와 비슷한 표현이더군요. 딸은 친구들이 자신에게 꼽주는 행동을 해서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내가 잘못한게 있는데 그
같은 품종 다른 이야기, 그리고 G1 살랑이는 바람에 붉은 대지와 푸른 녹음이 교차하는 고원 위, 구름이 잠시 머무는 언덕 저 멀리 아바야 호수(Lake Abaya)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호수를 감싸 안듯 펼쳐진 고원의 붉은 토양, 바나나 나무 사이를 지난 햇빛이 작은 초록색 커피 열매에 부딪혀 은은하게 사라진다. “향과 맛이 교차하는 경계의 땅, 아바야” 평일과 주말이 교차하는 금요일, 분주했던 한주의 끝자락, 6월의 햇살을 받으며 조금 느린 걸음으로 카페로 들어간다. 브루잉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수강생이 운영하는 카페, 차분한 음악이 공간을 감싼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찾아본다. 직원들과 빵을 만들고 있던 그와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다. 카운터에 선 그에게 묻는다. “어떤 커피 추천해주실래요? 추천해주시는 커피로 마실게요!” 이어진 그의 대답, “과테말라를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망설임 없이 과테말라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그의 브루잉 준비가 시작된다. 브루잉하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가 추출되는 과정을 바라본다. 드리퍼에 원두 가루가 담기고, 첫 물줄기가 떨어진다. 강의실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과테말라 커피가 추출
말끝을 3초 늘렸더니 행복이 보인다. 어느 날 감정과 말투는 무슨 관계인지라고 궁금한 적이 있었다. 말투 때문에 감정이 달라지는 걸까? 감정 때문에 말투가 안 좋아지는 걸까? 사실, 과학적이거나 논문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어쩜 두 가지다 맞는 말인 듯하다. 평범한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남편은 주방으로 (걸어오며) 오면서 말한다. “물 줘" 하라는 짧은 이 두 글자는 1초도 안 걸렸지만, 누가 들어도 명령이라는 생각이 드는 말투이다. 이런 말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순종형인 아내로 지금껏 살아왔지만, 이젠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내 변화를 위해선 부탁이라는 것도 필요했다. 얼마 전 읽었던 ‘비폭력 대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탁이라는 것은 상대가 들어줄 수도 있고 안 들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이를 깨닫고 상대의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정중히 남편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다시 남편이 말한 "물 줘"의 두 글자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비로소 찾았다. "물 줘" 뒤에 조금의 편안한 쉼과 여유 있는 말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여보 "물 줘"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