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많았지만 깊이는 없었다 강연을 좋아한다.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어서다. 그 사람만의 언어와 표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 몰입도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책보다 강연에서 더 쉽게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 전 벌꿀로 유명한 안상규 대표의 토크콘서트를 다녀왔다. 설렘 때문이었을까, 새벽부터 눈이 떠졌고 천둥소리에 잠깐 걱정도 됐다. 다행히 기차 탈 무렵엔 비가 잦아들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대구역행 기차에 올랐다. 어떤 분일까? 기차 안에서 미리 검색해본다.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세우며 여러 후원 사업을 이어온 이력이 눈에 띈다. 몸소 나눔을 실천해온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다가갔다. 오늘 강연이 내 삶에 새로운 점 하나를 찍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강연장에 들어섰다. 무대에 선 안상규 대표, 나와 같은 고향인 경상도라 그런지 사투리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작은 체구였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었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어낸 삶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리라. 44년을 벌과 함께 산 인생. 벌들을 온몸에 붙이고 대중 앞에 섰던 숱한 시도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원하며
몸이 기억하는 쉼 유난히 힘들고 지친 하루. 가족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가슴에 내려앉더니,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스르르 빠져나가 버렸다. 퇴근 후 해야 할 일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잠시 뒤로한 채 무작정 목욕탕으로 향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평소라면 10분이면 닿았을 거리를, 그날따라 발걸음이 무거워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마감을 앞둔 탕 안에는 한두 사람의 모습만 보였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나를 감싸 안는 듯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나는 오랜만에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했다. 물이 내게 다가오는 그 감각. 얼마나 따뜻한지, 또 얼마나 서늘한지. 물속에서 흔들리는 내 몸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몸통을 좌우로 흔들어도 보고, 아이처럼 발장구도 쳐 보았다. 몸에서 힘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마치 태초의 양수 속에 떠 있던 아기가 된 것처럼.두 다리를 가만히 모아도 보고, 눈을 감아도 보고, 깊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렇게 감각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 깊은 곳의 장기들까지도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뛰는 박동,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조용한
고모의 피아노 매년 4월 식목일이 다가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산소를 고모와 함께 찾아갑니다. 산소를 갔다가 멋진 카페도 들려보고 맛집에서 식사하는 기분이 일 년에 행해지는 연중행사로 즐겁습니다. 고모를 모시고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하다 보면 고모의 모습 속에서 자상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다가옵니다. 고모와의 추억 속에서 함께한 대화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몰입되어 갑니다. 학교음악 선생님으로 정년 되임을 하시고도 늘 바쁘신 모습의 고모 어릴 적 기억으로, 저에게는 연예인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진 미모의 모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특히 피아노를 멋지게 치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 기억에 있습니다. 예쁘고 젊은 고모의 얼굴과 함께 피아노 건반이 움직이는 그 시간은 마치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음악을 선물로 주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고모의 하얀 손은 악보의 음표들에 마술을 거는 듯했고,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싶은 저는 며칠 동안, 엄마를 조릅니다. “엄마! 나도 고모처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 피아노학원에 가고 싶어요” 심부름도 열심히 해보고 국어 시험도 100점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피아노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바람과는
새 신발이 편해질 무렵 여름이 다가오면 외출을 준비하는 손길이 조금 더 바빠집니다.선글라스, 양산, 물, 썬크림등이 가방 속으로 들어가면 겨울보다도 더 묵직한 가방이 됩니다. 잘 신고 다니던 운동화도 왠지 답답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신발가게에 놓여있는 여름 신발에 눈이 갑니다. ‘사놓고도 결국 운동화만 신는 건 아닐까’ 시원하게 신고 다닐 샌들을 사고 싶지만 운동화만 또 신을까 봐 갈등을 하다가 결국 신발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운동화처럼 편안한 샌들을 추천해주세요 ” 직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고객님! 요즘은 굽이 있어도 착용감이 편안한 여름 샌들이 아주 많아요. 마음에 드는 것부터 한번 신어보고 결정하세요” 몇 켤레를 신었다 벗기를 반복하다가 그중에서 제일 편한 것을 선택합니다.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그 기억을 떠올리며, 새 신발을 신고 버스정류장을 향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아 발등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샌들의 가죽이 발등을 너무 조여서, 벌겋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잠시 약국에 가서 상처가 난 발등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서, 신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슬그머니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냥 운동화를 신고 다닐걸. 괜히 굽이 있는 신발을 사서
내려놓아야 채워지는 것들 이제 조금 더위가 지나가고 있다. 너무나 더웠던 올해 여름, 늦은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다녀왔다. 평소 같으면 노트북과 책들로 가방이 무거웠겠지만, 이번에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충전시키고 싶어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녀왔다. 이렇듯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있어야 다시 돌아와도 새로운 회복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바쁜 일상에 그렇지 못한 듯하다. 휴가를 가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메일함을 확인하고, 밀린 업무를 걱정한다. 몸은 바닷가에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있다. 나 또한 그랬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멈추는 것을 불안하게 만든다. 잠시라도 뒤처질까 봐, 남들에게 게을러 보일까 봐, 우리는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늘 반쯤 켜진 상태로 방전되어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괜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고, 여행지에서 떠오른 생각이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완전한 쉼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 하지만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랑의 잔소리가 지나가면 딸아이가 인사를 합니다. “엄마 카페에 공부하러 갔다올께” 그러나 제 눈에는 아이가 착용하고 있는 커다란 헤드셋이 보입니다. 제 눈에는 아이가 쓰고 있는 커다란 헤드셋이 보입니다. “도서관에 안가고 카페가서 공부하려고? 그리고 길거리에서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면 불편하지 않겠니? 그러다 뒤에서 차가 지나가도 모르겠다 ”“엄마! 요즘은 도서관보다 카페가 더 공부가 잘돼요. 그리고 이렇게 커다란 헤드셋이 유행이야” 딸 아이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히면서, 그 순간 어릴 적 어머니의 음성이 귀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딸 아이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히면서, 헤드셋을 쓴 채 총총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문득 그 뒷모습 위로, 어릴 적 제 뒷모습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겹쳐옵니다. 항상 앞을 보고 차 조심하고 이어폰 듣지 말고 가라 도서관을 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항상 앞을 보고 차 조심하고 이어폰 듣지 마라 도서관을 가는 저에게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모습을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항상 뒤로 하고 집 밖을 나왔습니다. 엄마는 공부할 때 늘 음악을 틀어놓으
비움은 다시 채우기 위한 마중물 비움은 잃는 일이 아닙니다. 다시 채우기 위해 먼저 자리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지난주, 저는 몸과 마음을 너무 많이 사용한 나머지 완전히 방전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고 몸은 더 움직이기를 거부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쉼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맞이한 강제적인 비움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힘들게 보내며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미리 조금씩 쉬고 내려놓았다면, 다른 일들까지 멈추게 하는 깊은 방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비움을 게으름이나 후퇴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지혜로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우리 몸의 혈액도 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적혈구는 일정한 수명을 다하면 간과 비장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골수에서는 새로운 적혈구가 계속 만들어집니다. 피를 일부러 빼내야 새 피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세포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우는 순환 속에서 몸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무조건 버려야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역할을 다한 걱정과 미련, 지나친 책임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줄어듭니다. 마
한 여름밤에 꿈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기대했지만, 여름이 열어주는 새벽은 땀을 송글송글 이마에 맺게 해주고 시원한 곳이 그리워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 삼복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렸던 어느 8월, 아버지와 함께 갔었던 바닷가가 생각이 유난히 많이 납니다. 학교에 근무하시던 아버지의 방학 일정에 따라 매년 여름이 되면 저희 가족은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바닷물을 좋아하시고 모래로 찜질하는 것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바닷물을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여름 바닷물에 발을 담가야 피곤이 풀어지고 한 해의 피로감이 풀린다는 것이 당신의 철학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해로 피서를 가기 위해선 대관령의 많은 산을 넘어야 했었습니다. 아흔 아홉개의 고개를 넘어야 강원도 바닷가로 갈 수 있었기에 날씨는 맑아야 했었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낀 날씨이면 고개를 넘을 수가 없어서, 피서의 날짜도 지연되곤 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지연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고 또 고개를 넘기 전에 다른 숙소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빠 저는 바다 가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처럼 수영장에도 가고 싶어요 ” 저는 오랜 시간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이 너무
30년, 한마디 인사가 만든 행복한 하루 어머니의 수술로 오랜만에 예전에 근무했던 병원을 찾았습니다.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으로 들어왔던 곳,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제 의료 현장이 달라 수많은 실수를 하며 신입 간호사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그러나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병원은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곳곳이 새롭게 단장되어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고, 함께 근무했던 익숙한 얼굴들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 로비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과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편의점에 가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한마디가 제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6층 신경외과.” 뒤를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신입 간호사 시절 같은 병동에서 근무했던 선배 간호사였습니다. 선배는 아직도 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때로 엄격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게 후배들을 챙겨주던 분이었습니다.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다정한 말투까지도 제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게 되면, 마치 작은 행운을 얻은 듯합니다.그런 행운을 갖게 될 때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그 좁은 자리에서 몇 가지 일을 시작합니다.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음악도 듣기도 하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주는 시간이 됩니다. 그날도 고개를 숙이고 문자를 보느라, 연로하신 어르신분께서 바로 앞서 계셨던 것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순간 엄마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에고.. 넘 미안하네..” 어르신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시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으셔서 다리를 주무르시는 어르신을 보니, 문득 다리가 아프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부모님과 함께했던 과거의 어느 날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 좋은 추억을 쌓을 생각에 여행코스도 꼼꼼히 계획했었습니다. 성산 일출봉과 제주도의 바닷길을 산책하면서 사진도 많이 촬영할 생각에 기분이 들뜨고 신났습니다.부모님의 여행이 어쩌면 자주 오지 못할까 봐 더 소중하게 생각되었던 시간이었나 봅니다. 제주도의 바닷길 풍경을 보면서 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