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의 문턱을 낮추는 작은 계기- 팬 문화가 만든 변화 헌혈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 경험이 없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주사바늘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고, 어쩌면 헌혈과 관련된 의미 없는 불안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죠. 맞아요. 무언가 처음 시도할 때는 작은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자의든 타의든 경험을 시작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말이죠. 최근 유명한 기획사의 제안으로 이색적인 헌혈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엔 하이픈이라는 그룹인데요. 이들의 모티브가 ‘뱀파이어’라고 합니다. 피를 마시는 가수와 헌혈과의 연결, 참 흥미롭지 않나요? 서울에 있는 일부 헌혈의 집에서만 진행된 헌혈 이벤트인데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센터도 포함되었습니다. 헌혈하면 그룹 멤버들의 미공개 포토카드와 ‘blood bite’글자가 새겨진 초콜릿을 증정하는 거예요. 게다가 헌혈의 집 내부에는 앨범과 그들의 사진, 소품들로 특별한 공간연출도 하였습니다. 경험과 재미를 함께 할 수 있게 말이죠. 이 특별한 프로모션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10대, 20대 팬클럽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무려 11시간이나 배와 버스를 타고 온 고등학생도
어느 주말, 수면을 다시 생각하다 어느 바쁜 주말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몰려온 피로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CRM 상담사의 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늘 헌혈하신 000헌혈자님이 지금 어지러워 버스 정류장에 계신다고 합니다. 연결해드릴까요?” “네 ” 짧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헌혈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버스 정류장이요.” “지금 어디가 가장 불편하세요?” “속이 좀 안 좋고, 어지러워요” “의자에 앉아 계시고, 가능하다면 누워서 다리 들고 계세요. 제가 지금 바로 갈께요.” 목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태인지 느껴졌습니다. 이동 혈압계를 챙겨 들고, 급히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헌혈 후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 없이 귀가하지만 간혹 오늘처럼 헌혈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비교적 흔한 증상이 혈관미주신경반응인데요. 과도한 긴장이나 불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나타나게 되죠. 특히 처음이거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때 헌혈하는 경우 그럴 수 있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왜 우리는 늘 목표 앞에서 지치는가 어느새 새해가 지난 지 10일이나 되었어요. 위클리 다이어리를 쓰는 저에게는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따라옵니다. ‘어휴, 벌써 한 주가 지난거야? 시간이 왜 이리 빠른 거야.’ 나지막이 읊조리는 혼잣말에 지나가던 막내가 피식 웃음을 건넵니다. “엄마, 이제 겨우 한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는 거야” 딸의 말이 오늘따라 더욱 친숙하게 들리며 작은 철학자의 가르침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에 흡수되는 온도는 이렇게나 다른가봅니다. 늘 이맘때면 연중행사와 같던 저의 독백, ‘시간은 늘 부족한데, 할 일은 늘어나는 이유는 뭐지? 몸은 예전과 같지 않은데 말이야’ 어느 심리학자가 한 말이 불현 듯 기억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몸은 약해질 수 있지만, 지혜는 강해지기에 너무 슬퍼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죠.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혜보다 어쩌면 몸으로 밀어붙인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와 몇몇 모임을 하면서 삶에는 늘 진심이라 믿었지만, 결과를 보면 불만족한
내 몸이 보내는 ‘세로줄’ 당신은 읽고 있습니까? 평온한 주말 오전, 보고 싶었던 책도 볼 겸 도서관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모처럼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저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죠. 그때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을 보는 순간,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헉” 갑자기 멈춰버린 핸드폰 화면, 손가락으로 톡톡 몇 번씩 두드려 보고, 수차례 밀어도 보았지만, 저의 초조한 마음과는 달리 스마트폰의 화면은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어, 왜 이러지?” 당황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요즘 핸드폰은 ‘오장칠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몸의 일부와도 같은, 그야말로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죠. 평소와는 다른 이상함을 느낀 저는 도서관을 포기하고, 서비스센터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 운영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핸드폰을 본 직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나지막이 말을 건넵니다. “아. 액정이 나갔어요,” 한숨 섞인 그의 표정에서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길게 그어진 세로선을 가리키며 그는 말을 더했습니다. “고객님 원래
출근길, 사랑을 생각하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출근길입니다. 비 때문일까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오늘따라 왠지 감성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러려고 날 사랑했니? 나를 사랑하게 했니?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노래한 그 가사가 오랫동안 귓가에 머물러있습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일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 이끌리셨나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이란 참 신기합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조건 없는 사랑을 하기도하고,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같은 동료라도 마음의 거리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게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은 왠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니까요. 연인과의 사랑은 또 어떤가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두 사람이 운명처럼 이끌려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게 되기도 하죠. 수많은 사람 중 당신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인연’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합니다. 외모, 능력, 성격 등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
멈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멈춤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생각지 못한 순간에 멈춤과 함께 하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남편과 함께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운영하던 학원이 멈춰 섰다. 생각하기도 힘든 시간, 우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던 터전이, 우리 부부가 힘들게 일구어 놓은 장소가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지 학원만 멈추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통장의 흐름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도 함께 멈춘 시간들... ... ‘각자 일하고 있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아이들 교육비는 어떻게 하면 좋지?’ 말수가 없는 남편의 마음은 미처 헤아리지도 못한 채, 나는 그저 함께 일하고자 했었던 결정이 마냥 후회스러웠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지금 돌아보면 미안한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만 하다. 하지만 당장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의 학원비조차 빠듯했던 시간들 사이에서 남편의 감정마저 살뜰히 돌보기란 힘든 일이었다. 단지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내 머리에 맴돌았다. 아이들의 꿈을 부모로서 도와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할 때면 그저 주저앉고만 싶었다.
침묵이 건네는 위로 멀리서 녹색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다. 추위를 피해 뛰어가려던 내 발자국은 멈추어지고, 느린 걸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선다. 다시 움직임을 허락할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걷기도, 뛰기도 때로는 멈추기도 하는 도로 위 신호등, 우리의 인생 역시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신호에 기다리고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념의 끝에 어느 후배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후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무 중 예상치 못한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나 역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일상의 시작이 순간 무너져 내렸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려왔다. 이별은 늘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준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면 그 상처는 너무나 오랜 시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추운 날씨,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혼자 슬퍼할 후배를 생각하며 한걸음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며칠 만에 수척해 버린 얼굴, 아직 미혼, 외동딸로 곱게 자란 그녀라 장례식장에 혼자였지만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멈춤의 시간으로 달라진 위치 나는 40대 초반까지 비교적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꼭 이뤄야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그저 이쯤이면 평균 정도는 될 수 있겠다며 무난히 지냈다. 운이 좋아서인지 희망했던 일들도 거의 이루어졌다. 남들이 말하는 죽을 만큼의 노력을 살면서 아직 해 볼 기회는 크게 없었던 듯하다. 다만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리 편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일생일대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늘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그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이 없어서 그저 돕기만 하는 건 아닌데, 왜 사람들은 필요할 때 말하면 언제든 내가 도와줄 거로 생각하지?” 내가 원해서 도와주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가끔 있었다. 감사를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도리어 권리처럼 행사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마음이 힘들었다. 그런 느낌을 자꾸 받게 되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던 일들을 멈추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눈이 내린 날, 잠시 멈춘 걱정들 퇴근길. 창밖으로 행복이 흩날린다. 첫눈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설레임이란 언제나 나를 소녀의 감성에 머물도록 만든다. 그래서인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 가사가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안일을 마친 나는 피곤함에 소파로 다가가 창밖을 바라본다. 여전히 하얗게 내리고 있는 눈을 보며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어본다. 사실 최근 바쁜 일정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오늘만큼은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와, 예쁘다!” 어느새 하얗게 바뀌어 가는 세상을 보며, 알 수 없는 행복에 젖어 든다. 눈을 굴리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어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첫눈이라는 마법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 듯하다. 세상에 떠다니던 모든 걱정을 잠시나마 덮어버린 듯. 하얀색으로... ... 순간 날아갈 듯 가벼워진 나는 하얀 눈을 밟으며 아파트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과 눈싸움하며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 첫눈을 맞으며 함께 거닐던 다정했던 시절 등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며 행복한 과거로의 여행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시간의 엘리베이터 안, 문이 닫힐 때쯤 멀리서 뛰어오는 인기척이 들립니다. 저는 누군지 모를 그를 위해 잠시 기다려봅니다. 고맙다며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이는 위층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였습니다. 짊어진 가방의 무게로 허리춤까지 내려온 그의 가방이 제 눈에는 안쓰럽게 보이기만 합니다. 아마도 학원에 다녀오는 듯합니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을 바라보다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저는 학교가 마치면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이랑 노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또래뿐 아니라 동네 언니, 오빠들 모두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밖에서 뛰어 놀다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날은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었고, 신나게 놀았기에 피곤함으로 일찍 꿈나라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꼬마 숙녀와의 짧은 눈 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저는 집으로 들어옵니다. 불이 켜진 아이 방을 조심스레 열어봅니다. 시험 준비로 요즘 피곤하였던지 교복을 입은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씻고 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항상 잠이 부족한 아이라 조용히 불을 끄고 나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언제 행복할지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