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에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공은 당시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던 절망 섞인 염원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 교육이 쏘아올린 공은 달랐다. 그것은 척박한 땅에 떨어진 씨앗이었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낸 단호한 칼날이었으며, 마침내 한강의 기적이라는 거대한 꽃을 피워낸 생명력이었다. 교사는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서의 눈부신 역할로 틈새를 메우며 해외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선진국의 위상과 번영, 완전한 민주주의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속에는 교실 창가에서, 기름때 묻은 공고의 실습실에서, 그리고 밤을 지새우던 야간의 학교 전등 아래서 시작된 '교육의 힘'이 거둔 결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 교육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떻게 국가 부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의 미래 교육의 방향과 의지를 다지고자 한다. 첫째, 문맹 퇴치와 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78%에 달했다. 이름 석 자 적지 못하는 국민이 태반이었던 나라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글눈'을 뜨게 하는 일에
한비자(韓非子) 제 22편에 진(晋)의 대부 지백(智白)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부친인 지선자가 자기의 장자 지백으로 후사를 삼으려 하자 주변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아름다운 턱수염이 길고 큰 것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것이 뛰어나고, 기예(技藝)가 뛰어나고, 교묘한 문장과 말솜씨가 뛰어나고, 세고 굳고 과감한 것들이 뛰어납니다. 이와 같지만 그는 아주 어질지 못합니다. 만약에 끝내 지백을 세우면 지씨 종족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선자는 주위의 말을 듣지 않고 지백에게 권력을 물려주었고 과연 오래지 않아 지백은 자신의 용력만 믿고 주변의 제후들을 윽박지르다 멸망을 하고 만다. 옛 사람은 재주와 덕(德)을 온전히 다 갖춘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하며, 재주와 덕이 아울러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며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재주와 덕을 겸비하기가 어렵지만 둘 중 하나만 가져야 한다면 덕을 갖추는 것이 맞다.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재주는 재앙이다. 위인들 중 많은 이들은 재주가 덕을 능가해 자칫 잘못될 수 있었으나
나는 한 달에 한 번 전교 어린이 임원회의에 꼭 참석한다. 임원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그 자리에 앉는다. 회의의 앞부분, 맨 처음 10분은 내가 일부러 비워 둔 시간이다. 그 10분 동안은 전교어린이 임원들의 이야기에 완전 집중한다. 어른들이 너희들의 이야기에 정말 관심이 많다는 느낌이 어린이들에게 꼭 전해지길 바라면서. 아이들이 말하는 불편과 제안은 늘 ‘작아 보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학교는 그 작은 말에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가능한 일은 가능한 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확답한다. “좋다, 그렇게 하자.” 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애매하게 넘기지 않는다. “이건 시간이 좀 걸린다. 언제까지 기다려 달라.” 아이들은 기다리는 것보다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혼자 결정하는 시간이 아니다. 교감 선생님이 답할 일은 교감 선생님이, 실장님이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실장님이 즉시 확인해 준다. 그 자리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학교에서 가장 좋은 행정은 멀리 돌아가지 않고 얼굴을 보고 답하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6학년 한 어린이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선생
"2009년 어느 날, 이 땅에서 빛나는 돌 하나가 발견됐다. 서구 세계에서 이건 사치, 매력, 부를 의미하지만, 내 동포들에겐 그 반대다. 죽음, 가난, 살인이다." 모잠비크의 탐사보도기자 에스타치오 발로이(Estacio Valoi)의 말이다. 그가 말하는 빛나는 돌이란 ‘루비’이고 루비 때문에 그들은 재앙을 추래하게 된다. 루비가 발견된 지 6개월여 후, 음위리티(Mwiriti)라는 회사가 나타나 정부로부터 이 지역 탐사권을 받았고, 2년 후엔 2036년까지 25년간의 독점 채굴권을 부여받았다. 집권당 유력 인사들이 개입된 회사다. 카부델가두는 모잠비크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다. 석탄, 금, 흑연, 루비, 철광석, 티타늄, 목재, 천연가스 등 다양한 자원이 몰려 있다. 그때까지 괭이로 땅굴을 파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루비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쫓겨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산채로 매몰되기도 했다. 루비의 저주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카부델가도는 가장 가난하다. 2020년 기준, 77%의 가구가 하루 40메티칼(약 960원) 이하로 생활하고, 주민 3분의 2가 하루 세 끼 식사를 다 하지 못한
◇ 교육의 공간적 확장: 교실 안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힐 때 지난 칼럼을 통해 저는 AI와 디지털 혁명의 파고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실질적 문해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임을 강조했습니다. 기술의 도입보다 시급한 것은 ‘깊이 읽는 힘’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짚어보건대, 문해력 향상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 혹은 공교육 종사자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 전체의 문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교실 안의 분투는 결국 고립된 섬의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된다면 어떨까?”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거대한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던 '일상 속 도서관'의 힘이었습니다. ◇ 생각하는 도시, 사유(思惟)를 공유하는 읽는 공동체 진정한 ‘독서 국가’의 완성은 책을 교실과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격벽에 가두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독서가 하나의 ‘과제’가 아닌 ‘문화’로 정착하려면 일상의 결 속에 독서의 호흡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교장선생님, 공룡이 추워 보여요.” 아이의 말은 언제나 정확하다. 운동장 한켠에 서 있던 공룡 동상들은 햇볕과 비를 견디며 조금씩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그 모습이 ‘낡았다’가 아니라 ‘춥다’로 보였다. 아이의 마음이 먼저 추워질 때, 세상은 이미 많이 낡아 있다. 나는 공룡을 한 번 보고, 아이를 한 번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간 공룡이 백색공룡이 되게 생겼다.” 아이들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공룡을 걱정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어른들보다 먼저, 아이들은 학교 풍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공룡을 다시 칠하려면 3천만 원이 든다고 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수업료가 전국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재정은 늘 빠듯하다. 인건비와 기본 지출을 제하고 나면 1년에 남는 예산은 약 1억 원. 그 돈으로 학교 수리와 각종 사업을 감당해야 한다. 외벽 페인트 공사만 해도 1억 3천만 원이라는 견적을 받았다.그마저도 마련하기 어려워 몇 해를 미뤄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학교 곳곳의 벽은 많이 낡아 페인트 껍데기가 너덜너덜 벗겨지는 곳이 생겼다.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공간이었다. 결국 더는 미룰 수 없어 외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과도한 경쟁, 치열한 입시 중심, 아이들의 정서와 생태 취약 — 이러한 현실을 한마디 고사성어로 요약한다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할 것이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이 뒤바뀐 채 권력이나 결과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상황을 비유한다.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도 진정한 학습과 성장보다 성적과 입시라는 ‘결과’가 기준이 되어 옳고 그름이 전도되고 있지 않은가? 본고에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육 현안을 고전의 지혜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지록위마’ 교육을 넘는 길 — 공자의 仁과 學 스승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학이즉사불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 했다. 이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배움의 양적 확장엔 성공했으나, 사고의 깊이, 인격의 성찰을 놓쳐 왔다. 왜냐면 점수로 말해지는 경쟁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 암기 중심이 아닌 사유하는 학습, 내적 동기 중심으로 교육의 기준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라 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