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 생각을 바꾼다 9월도 어느새 중순으로 향하고 있는 새벽, 창밖을 내다보니 어둠은 아직 남겨져 있다. 게으름을 피우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가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콧등을 살포시 스친다. 나는 양팔을 최대한 크게 벌려 깊은 호흡으로 숨을 들여 마셔본다. 상쾌한 공기가 나의 몸 구석구석을 조용히 깨우고, 피부에 닿는 약간의 차가움은 게으름에 취했던 나를 완전히 깨어나게 만든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정해진 패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백로(白露)가 지나서인지 찌는 듯한 무더위도 한풀 꺾여 달리기가 훨씬 가볍다. 늘 지나는 거리라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보이는 색은 달라지는 듯하다. 오늘은 모퉁이를 돌 때, 아직 남아있는 하늘의 하얀색 달도 예쁘게 보인다.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생각이 행동을 만든다고, 그러나 때로는 행동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 아침,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을 멈추고, 내가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행동을 먼저 했더니 놀랍게도 나의 생각이 변화되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즉 생각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에서 생기는 심리적 긴장감을 우리는 때로 불편하게
오랜 항해와 망망대해에 지친 1등 항해사는 어느 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여 근무 중에 술을 한 잔 마셨다. 하필이면 그 때 그것을 목격한 선장이 항해일지에 “오늘 1등 항해사는 근무 중 술을 마셨다.” 라고 적었다. 항해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선장은 자신이 없는 사실을 적은 게 아니라면서 끝내 기록을 지워주지 않았다. 며칠 후 선장의 근무 날이 되자 항해사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선장은 근무 중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선장은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다. “이게 뭔가! 다른 근무 때는 내가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항해사는 대답했다. “나는 사실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말은 묘한 힘을 가졌다. 단어 몇 개를 추가하거나 빼버리면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하고 앞뒤를 바꾸어도 전혀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말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치는 동안 착각이나 의도에 의해 자꾸 변하고 부풀려진다. 그래서 종착지에 도달할 즈음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말로 인한 화가 개인의 생에서부터 가족이나 국가에 미치고 인류의 역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내가 담임을 했던 여학
(업무) 메일 잘 쓰기 3: 이해가 잘되는 단어 선택하기 ‘(업무) 메일 잘 쓰기’ 셋째 시간이 돌아왔다. 뜨거웠던 여름을 돌아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차분하게 글쓰기 능력을 한층 높이는 시간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업무) 메일 쓰기도 공적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의 하나로서, 표기·표현 지침의 두 가지 축이 적용된다. 두 가지 축이란 바로 ‘정확성’과 ‘소통성’이다. ‘정확성’에는 맞춤법, 의미에 맞는 단어 선택, 문법에 맞는 문장 구성 등이 있고, ‘소통성’에는 차별적·고압적 표현 지양이나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 말미에서 예고한 대로 ‘소통성-용이성 추구’ 차원에서 ‘낯선 단어보다 이해하기 쉬운 익숙한 단어 쓰기’에 대해 살펴본다. 지난주 문서 작성 강의에서, 어떤 분이 자신이 받은 글에 ‘적의 조치’라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 ‘적의’가 익숙지 않은 단어였다면서 이런 말을 써야 하나 하며 질문을 했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공적인 글에 ‘적의 조치하시기 바랍니다.’처럼 ‘적의’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요즘은 ‘적의 조치하다’보다는 ‘알맞게/적절하게/-에 따라 조치하다’ 같은 표현이 더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인
이제야 마음에서 보이는 사랑 주말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어린 나와 단둘이 외출하셨다. 어디든 장소는 상관없었다. 외롭지 말라고, 늦둥이 막내딸을 위해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나들이를 준비해 주신 거였다. 그날도 놀이동산에 아버지와 단둘이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셨을 텐데 딸의 기분에 맞추어 함께 뛰고 웃으며 사진도 많이 찍어 주셨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른 가족들이 함께 모여 도란도란 밥 먹는 모습에 괜시리 어린 나의 시선이 멈췄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도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나를 본 아버지는 내가 가질 감정을 미리 아시는 듯, 뻘뻘 땀을 흘리며 온갖 먹을 것을 사서 내 앞에 가져다주셨다. 이렇게라도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해 속상할 마음이 풀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 모습이, 그 마음이 아직도 선명히 내 가슴 속에 그려져 있다. 남들 눈엔 부족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완벽했던 아버지. 지금은 그 다정한 모습을 눈물로 그려 보아도 볼 수 없지만, 그때의 기억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은 따뜻해지고 미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늘 바쁘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분이셨다. 보험 영업이라는
한 사람이 천국 문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그는 살아생전에 가난한 이웃을 돕기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사는 그의 천국 입장을 거부했다. “당신은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내가 무엇을 훔쳤다는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존엄성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존엄성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오직 구걸을 할 때만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84쪽). 가난한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 얼마나 망설이고 얼마나 자존심 상해했으며 자신의 신세를 슬퍼했을까. 레바논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청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 때 고개를 돌리십시오. 그들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마주치지 않도록-” 기독교의 십계명 중 제 8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이다. 글자 수도 몇 자 안 되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난해 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도둑질의 외연(外延)을 금
할머니와 칼국수 서문시장을 경유하는 버스 안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마침 빈 좌석이 나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승용차로 다니면서 볼 수 없었던 내가 사는 마을 풍경들을 바라보며 버스의 묘미를 느낀다. ‘환승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버스 카드 단말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슬쩍슬쩍 손님들을 바라본다. ‘사랑합니다’ 카드 단말기 인사말에 고개를 들었다. 80대쯤 보이는 할머니가 타신다…. 휘청하는 할머니 뒤로 ‘할머니 손잡이 잡으세요. 넘어지면 큰일 납니다’ 기사님의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어드리고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반만 보이는 버스 밖 풍경들을 보며 버스와 동행한다.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정류장은 황금시장입니다’ 안내방송이 들렸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에 눈을 떼고 버스에 올라오는 손님들의 모습들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다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올라오시는 버스 손님은 8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차비 받으세요’라고 하며 할머니는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거스름돈이 없어서 못 받아요. 그러니 차에서 내리세요‘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현금뿐이라고 애원하는 할머니
거품 하루를 마치며 학원에서 늦게 퇴근하는 신랑과 집에서 맥주 한잔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특별한 화두가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인생의 동지로서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그 좋던 시간들도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드문드문 이루어진다. 신랑은 내 눈과 마주치면 “한잔할까?”라는 이야기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듯하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부산스러운 내 모습, 매일 앉아 있어 살이 쪘다고 투정하는 말, 갱년기라 핑계 대며 여기저기 아프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그 좋아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고만 있다. 맥주가 좋은 이유는 차가움이 바로 입안으로 적셔지기 전에, 마중물처럼 포근히 거품이 먼저 감싸주기 때문이다. 다른 술들에게는 그러한 포근함이 없다. 우리 인생도 거품 위에 존재한다. 사람마다의 거품 정도는 다르다. 맥주를 마실 때 얼마나 흔들었느냐에 따라, 잔에 따를 때 기울기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거품 정도가 다르듯 인생도 얼마나 굴곡이 있었냐에 따라, 그 길을 어떻게 생각하고 걸어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거품 역시 다를 것이다. 포근한 거품은 따뜻함을 무기로,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을 알면서도 움직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