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초·중·고를 포함한 이주배경학생은 210,83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초·중·고 학생의 4.3%에 해당하며, 전년보다 4.3% 증가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주배경학생은 단순한 ‘외국인 유학생’보다 넓은 개념이다. 국제결혼가정 자녀, 외국인가정 자녀 등이 포함되므로, 이 숫자 전체를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땅의 학교는 다문화·이주배경학생의 증가가 그만큼 돋보인다는 것이다. 대학 쪽은 상황이 훨씬 뚜렷하다. 역시 동일 교육통계에 의하면 외국 학생은 307,464명으로 전년 253,434명에서 21.3%나 증가하여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에는 학위 과정 223,191명, 비학위과정 84,273명으로 구분되고 있다. 참고로 2025년에 비해 불과 1년 사이에 5만 4천 명 이상 증가한 것은 매우 돋보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직감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서두에서와 같이 외국인 유학생의 증가와 졸업생의 체류에 따른 것이다. 도심의 대학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이곳이 서울인지, 아니면 외국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학생 식당에 들르면 후드티를 눌
모처럼 시간이 많은 하루였다. 급하게 처리할 일도, 미리 잡힌 약속도 없었다. 읽고 싶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미뤄둔 집안일도 해치울 수 있겠다 싶었다. 여유롭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도착한 식당은 하필 휴무. 급히 다른 곳을 검색해 이동했지만, 이번엔 대기가 만만치 않았다. 더 돌아다니기엔 시간도 늦었고 배도 고파, 결국 근처에서 또 한참을 기다려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식사 한 끼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 딸아이와 카페에 가서 각자 책을 읽기로 한 약속도 결국 저녁 식사 뒤로 미뤄야 했다. 해 질 무렵, 마음 한구석이 스산해졌다. '오늘 대체 나는 뭘 한 걸까.' 많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사라져 있었다. 읽으려던 책도, 쓰려던 글도 결국 손도 대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내 하루를 몰래 훔쳐 간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없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
∙장학! 부담스러운 숙제 새학기나 장학 주간이 되면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돈다. "예전 관리자는 수업 참관을 안 하셨는데, 왜 우리 때는 자꾸 들어오려 하실까?" 교사들의 가벼운 불평 섞인 한숨 속에는, 수업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타인에게 내어준다는 본능적인 부담과 불편함이 묻어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 명시된 교장의 '소속 교직원 지도·감독' 권한과 책무가 존재하며, 교감은 이를 보좌해 교내 자율장학 계획을 수립하고 수업 개선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관리자의 교실 방문은 여전히 조력보다는 시찰이나 감독, 혹은 형식적인 연례 행사로 다가오기 일쑤다. 이 팽팽한 간극 속에서 자율장학은 종종 본래의 취지를 잃고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숙제가 되어버린다. ∙장학: ‘감시’가 아닌 ‘성장의 거울’이 되어야! 역사적으로 장학(Supervision)의 어원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감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오늘날 학술적 의미의 장학은 통제와 감독이 아닌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수업 성과 극대화를 위한 지도와 조언, 지원을 뜻한다. 하지만 교실 문을 닫아걸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에게 관리자의
우리는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목적지는 알고 있지만 항로는 늘 변하고, 때로는 거센 파도와 암초를 만나 방향을 잃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와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해진 길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어떻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인가?” 오디세우스는 힘이 강한 영웅이어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힘만으로 맞서기보다 지혜와 기지를 발휘했고, 상황이 바뀌면 전략을 바꾸고 때로는 기다릴 줄 알았다. 무엇보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항해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잃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복이 아니라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디세우스의 모든 행동을 모범으로 볼 수는 없다. 그의 여정에는 자만과 기만, 복수와 폭력 같은 인간적 한계도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읽고, 주어진 자원을 새롭게 활용하며, 실패와 위기 속에서도 다시 길을 찾는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는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는 개척정신의 한 원형으로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개척의 힘이 인간에게만 존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집에는 '고셰 신부의 불로장생주'라는 단편이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았던 프레몽트르 수도원의 재정이 바닥났다. 한 때는 잘 나가던 수도원이었으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찾는 이도 없어지고 종탑도 허물어지고 건물도 낡아서 무너지고 있었으나 보수할 재정도 없었다. 종을 살 돈이 없어 나무로 된 딱따기를 사용하여 기도시간을 알릴 정도였고 끼니를 메우기도 어려워졌다. 수도사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주위에서는 수군거리고 있었다. 대책회의를 거듭했으나 수도원을 회생시킬 방도는 전무했다. 어느 날도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자리에 남루한 수사가 엉거주춤 들어와 자신에게 기회를 주면 재정을 충당할 방도를 찾아보겠노라고 제안을 한다. 젖소를 돌보는 지극히 존재감 없는 수사였다. 모두들 어리숙한 그를 믿지 않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던 터라 허락을 했고 젖소를 돌보던 고셰 수사는 그날부터 재정난 타개를 위해 불로장생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 양부모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을 기억하며 6개월 동안 애쓴 결과 불로장생주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술은 불티나게 팔려 수도원은 돈방석에
지금으로부터 백십여 년 전, 1913년,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는 컨베이어 벨트를 공장에 도입하며 인류의 생산 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바퀴만 끼우는 사람’, ‘볼트만 조이는 사람’ 등으로 분업화된 공정 속에서 인력이 극도로 전문화되자 자동차 생산성은 폭발했다. 이른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시대의 화려한 서막이었다. 이후 학문과 사회도 이 컨베이어 벨트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지식의 총량이 급증하면서 학문은 잘게 쪼개졌고, 의학만 보더라도 눈은 안과, 코는 이비인후과, 심지어 세포나 장기 단위로 의사를 배출하는 초전문성 시대를 맞이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특정 분야의 지식을 독점한 소위 ‘사(士)’자 자격증은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성공의 보증수표로 등장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우리 교육은 여전히 한 세기가 훨씬 더 지난 ‘포드 시스템’에 갇혀 “한 우물만 파라”고 아이들의 등짝을 떠미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시대가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파고 있는 그 우물 밑바닥에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포
대한민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있었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에서 세계 정상에 섰고, 박지성이 작은 체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축구 무대를 누볐다. 장미란은 인간의 한계를 들어 올렸고, 류현진은 한국 야구의 수준을 메이저리그에 증명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또 있을까, 하면서 국민적 자긍심을 무한으로 높여주는 절대 1강 선수가 있다. 바로 우리 청소년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배드민턴의 안세영 선수이다. 그의 기록은 숫자만으로도 압도적이다. 2026년 9월 29일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2-0으로 꺾으며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사상 첫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올 시즌 성적은 57경기 56승 1패, 승률 98%를 넘었다. 이미 2023년 세계 선수권, 2024년 파리올림픽, 2026년 아시아선수권을 차례로 제패했고,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이른바 ‘그랜드슬램’이라는 마지막 위상까지 완성했다. 이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안세영 선수는 도대체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결코 화려한 재능에 있지 않다. 안세영 선수는 광주 풍암초등학교 1학년 때 라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