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말을 걸어온다. 2024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10명 중 약 3명이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경험했다(27.7%). 스트레스 인지율은 42.3%로 전년 대비 5%포인트 뛰었다. 청소년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은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여성가족부, '2025 청소년 통계'). 9세에서 24세 사이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1위가 자살이라니. 이 한 문장을 가볍게 읽고 넘기기 어렵다. 자해,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자살. 이 단어들이 청소년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고 있는 걸까.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분명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불안세대》에서 수십 건의 실험 결과를 종합한 뒤 이렇게 결론 내린다. "소셜 미디어 사용은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그 밖의 질환과 단순히 상관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건 2007년이다. 이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들의 하루가 바뀌었다. 하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십대가 화면 기반 레저 활동
본 특별기고는 지난 2026년 3월 31일(화) 러시아 볼고그라드국립사회-사범대학교가 개최한 국제 학술대회에서 카잔연방대학교 고영철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논문은 2026년 5월 러시아연방 교육부 인정 논문집에 게재될 예정이다. 러시아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주요 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극은 21세기 새로운 전략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변화로 해빙이 되어 북극 항로 상업화, 자원 및 에너지 개발 확대, 북극 산업 도시 증가, 국제 정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러시아와 최우선적으로 북극 항로의 해운 협력과, 다음으로 자원개발 협력이다. 그래서 대 상대국인 러시아의 협력을 위해 러시아의 법규와 정책 그리고 과학적 수준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북극 관련 국제법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스발바르조약(Svalbardtraktaten)이 있다. 그리고 비북극권 국가들은 영유권은 없지만 북극해 공해와 국제 해저지 그리고, 기타 특정 지역에서의 항행, 비행, 자원 탐사 및 개발 등의 자유와 권리가 있다. 북극관련 한국과 러시아에서의 선행 연구와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여러 연구가 활발히 이루
최근 동아일보의 보도(2026.4.7.)는 우리 교육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6년 전통의 여고도, 92년 된 남중도 못 피해간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기사의 충격에서 연유한다. 이는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를 피하지 못하는 소식이다. 작년 에만 무려 전국적으로 32개교가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고사(枯死) 방지책’이라거나, 고교학점제 아래서 내신 등급 확보를 위한 ‘학생 수 늘리기’라는 실용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남녀공학 전환을 단순한 ‘인구학적 생존 전략’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교육적 함의가 크다. 이제 우리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성에서 벗어나, 남녀공학이 미래 세대에게 제공할 ‘교육적 효능감’과 ‘민주 시민 육성’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즉, 80~90년 전통의 명예보다 소중한 ‘공존의 학습권’과 ‘민주 시민의 요람’에 대한 교육적 사명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흐름은 남학생은 남학교를 선호하고, 동문회는 모교의 정체성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교실 안의 모습은 달라져야 한다. 작년에 이어 고교학점제가
필자는 한때 인천형 혁신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당시 혁신학교들의 유행처럼 ‘배움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 즉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의 연구학교로서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교원과 학생회 소속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순번을 짜서 매일 아침 등교 맞이부터 상호 간에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는 학교 운영이 핵심이었다. 우리 말에 “시작이 반이다”라고 하듯이 아침부터 즐겁게 웃고 시작하는 얼굴에 소위 행운의 여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여 전반적으로 수년 간의 근무 기간 동안에 학교생활 자체가 다른 학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부모 간에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웃고 즐기면서 다양한 교육활동에 학생들과 교원의 교육력이 분산되면 학과 공부는 언제하고 학력 향상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학생부에 기록된 다양한 교육활동과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학생활동 등으로 개교 이래 실로 오랜만에 서울대 수시전형인 ‘지역 균형’에서 첫 합격자를 배출했으며 인(in)서울 대학에도 다수의 수시 합격자를 배출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즐거운 배움=학력
나는 매사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편이 아니다. 늘 쫓기듯 조바심을 낸다. 일찍 일어날 일이 있어 알람을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어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번을 일어나 시계를 보다가 결국에는 일어나 알람을 해제한다. 강박(强迫)증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름 시간을 충분히 계산하였으나 행여 차를 놓칠 새라 뜨거운 냄비 위의 개미처럼 안절부절 하며 용산 역에 도착하니 출발 시간이 30여 분이나 남았다.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몰려왔다. 30분이라도 더 재울 걸,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일 걸, 좀 더 놀아줄 걸, 한 번 더 안아줄 걸..... 딸아이에게 갔다가 목요일에 내려가야 하는데 ‘내일 줄장이 있어 새벽에 나가야 하니 손자를 유지원에 데려다 주고 내려가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예매해 놓은 ktx 표를 물리고 금요일 표를 사려고 보니 주말이라 모든 시간대가 전부 매진이 되고 겨우 9시 44분차만 그것도 역방향 좌석 두 개만 남았다. 일단 예매를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든 동선(動線)을 계산해 보니 서둘러야 했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빨리 깨워야 하고 씻기고 먹이고 택시를 타고 유치원으로 전철역으로 ktx 타는 곳으로 이동을 해
아직은 꽃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도 피어가는 중이니까 아침 등교 맞이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하나둘 교문을 지나 밝은 얼굴로 학교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였습니다. 1학년 여자 어린이가 걸어오다가 갑자기 한쪽에 쪼그려 앉아서 일어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교실로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 왜 저렇게 앉아 있는지 의아해서 다가갔습니다. “교실로 가야지. 왜 여기 앉아 있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아주 귀엽게 말합니다. “저는 다람쥐예요.”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엉뚱하기도 ㅎ 왜 이러는 걸까요?^^ 아이의 상상은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그 아이의 언어와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환경이 언어를 지배한다. — 박대훈^^ 교육은 가르친 만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이에 자라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복도에서의 일입니다. 저(장은희 실무사)는 행정실에서 나오고 있었고, 남자 아이 두 명이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옆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뛰지 말래.” 저의 눈빛에 뛰지 마라는 문장이 적혀 있
함께라면, 못 할 게 없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도 언제나 처음 며칠은 굳은 의지로 시작합니다. "이번엔 반드시 해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짐 사이로 바쁜 일상이 슬며시 끼어들고, 어느새 그 불꽃은 조용히 꺼져버립니다. 혼자라면, 대부분 그렇게 끝이 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걸까?” 그것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행복학교 선생님들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 글쓰기 좋은 습관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매일 짧게라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자고 서로 약속을 나눴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까지 더하면서요. 혹시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월말 모임에서 벌금을 내기로 하는 작은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작은 약속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책임과 신뢰가 담겨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빡빡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일주일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 편의 속삭임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몹시 아픕니다. ‘너무 힘들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서 창밖을 보면서 중얼거립니다. 쓰레기통에 묵은 감정들을 버릴 수 있다면, 아픈 상처를 버리고 싶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점점 통증이 찾아오고 다시 마음의 치료 약을 찾아보지만 구하기가 싶지 않습니다. 살면서 힘든 시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 못할 말들이 많았습니다.눈물이 나는 시간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마음 그릇에 담아두었던 힘든 시간이, 조금씩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누군가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을 ‘확인’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그저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는 한마디가 상처받은 마음을 가장 먼저 어루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위로를 해결책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마음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조용한 확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내 편이 생겼습니다. 나의 마음에 거울이 되어줍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제 모습처럼 닮아있습니다. 그냥 속상했던 마음을 이야기해 봅니다. ‘나 너무 속상
매년 대부분의 일반고등학교든 속앓이를 하듯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내의 성실한 우등생들이 주요 대학이 요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의 최저 기준(2개 영역 2등급 이상) 미달자가 되어 학교별 교육 성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나아가 공교육의 실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우절의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가 매년 입시철마다 비극적인 실화로 반복되고 있다. 고교 3년 내내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며 내신 1등급을 놓치지 않았던 학생이, 수능 당일 ‘2개 영역 2등급’이라는 최저학력기준조차 맞추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장면은 이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학원 도움 없이 오로지 학교 수업과 자습에 충실했던 ‘성실한 모범생’이 겪는 이 좌절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등급의 역설’로 몰아넣었는가? 내신 1등급임에도 수능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이른바 ‘수능 미달’ 현상은 지방 일반고와 교육 소외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2024학년도 대입 결과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내신 우수자 중 상당수가 수능 최저 기준 통
한때 모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하루는 영양교사가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 하듯이 “걱정이에요, 아이들이 고기반찬을 더 많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언뜻 듣기와는 달리 아이들의 올바른 신체적 성장에 깊은 고민이 묻어 있다. 남학교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육류에의 편식 성향이 강하다는 우려 섞인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초중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식판 위의 교육’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아이들의 몸을 만드는 '먹거리 교육'은 입시 우선주의에 밀려 한참이나 비정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편의점 간식과 당분이 가득한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급식 시간에 채소를 골라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뇌세포를 깨우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에너지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문제집이 아니라 '식판' 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채소와 과일을 멀리하는 편식 습관을 방치하는 것은, 아이의 학업 역량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과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