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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일)

김연희 작가 에세이

독서모임과 함께 성장하다

 

김연희 작가

 

몇 년 동안 책을 헤어진 연인처럼 잊고 산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아련한 추억에 몸살을 하다가 선뜻 다시 만날 마음은 쉽게 낼 수 없는 그런 관계처럼. 한때 책이라면 밤을 새워 읽고, 월급날 서점 가는 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이 내가 맞나 할 정도의 변심이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고, 읽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는 게 힘들고 바빠 시간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인데, 너무 오랫동안 내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로 잘 써먹었다. 그냥 읽지 않는 게 편했을 뿐이다.

 

 

한 번 몸에 익은 편안함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게으른 자의 핑계 내일부터는 꼭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다.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읽을 수밖에 없는 무슨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문화센터에서 보드게임을 배우는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선생님, 저 독서 모임 만들건대 같이 할래요?”

 

어머, 좋아요. 함께 해요.”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데 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야죠.”

 

 

그렇게 나는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밀어 넣어 버린다. 처음으로 하는 독서 모임. 한다고 냉큼 말은 했지만 돌아서 생각하니 얼떨떨하고 부담스러웠다.

 

 

발표 울렁증, 이거 어떡하지? 책 읽고 핵심 파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며 마음은 불안으로 요동쳤다.

 

 

일주일에 지정도서 한 권을 읽고 참석해야 한다는 말은, ‘과연 내가 읽고 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처음 참석한 모임은 5명이 전부였지만 나는 신세계를 접한 기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4명은 이미 경험이 다양한 독서의 고수들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 차라리 모르고 시작한 것이 행운이다.

 

 

어쨌든 첫 모임 이후로 나는 매주 독서 모임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물론 지정도서를 꼬박꼬박 읽으려 노력했지만, 일주일에 한 권은 부담스러웠다.

 

 

첫 모임에서 독서와 공부의 실제적 조언자 H 선배는,

 

우리는 부자 독서를 할 겁니다. 제가 말하는 부자는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에요. 행복한 부자가 되는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 나가려고 합니다.”

 

라며 우리 독서 모임의 방향성을 이야기했다. 단순히 책 읽기만 생각하고 참석했던 나에겐 다소 생소한 말이었지만, 그 독특함이 좋았다.

 

우리는 와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다.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와 행복한 삶을 위한 마음공부 책도 함께했다. 행복한 부자란 물질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H 선배의 말이 시간이 지나며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책은 늘 뒷부분은 읽지 못한 채 모임에 참석하고, 쫓기듯 읽고 간 책은 수박 겉핥기가 되어 갔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으로 바뀐 것은 무엇이냐의 고민을 하던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일상생활 자체를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모임은 고사하고 만나는 것조차 눈치 보이던 시절이지 않았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H 선배가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치료 경과가 좋았기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배의 부고는 코로나로 지친 우리를 좌절하게 했다. 모임의 가장 중심에서 우리를 이끌던 정신적 리더의 부재로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졌다.

 

내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던 모임의 리더 J가 다시 독서 모임을 재개하자고 했을 때는 코로나로 인한 통제도 조금은 완화되기 시작했을 즈음이다. 그때부터 우리의 책 읽기는 느린 독서로 변화를 한다.

 

미처 다 읽지도 못하고 다음 주 지정도서로 넘어가기 바빴던 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고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또 달라진 것은 낭독 독서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모임 날, 책을 돌아가며 낭독하고 서로 나눔을 한다. 실제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다 보면 잘 해왔던 것, 변화가 필요한 것 등을 스스로 깨닫고 서로 배워 가며 성장한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결국엔 목적지에 도달하는 뚝심을 발휘하고 있다. 책 한 권을 몇 달을 들고 있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책 읽기가 가능하다. 느린 독서를 통해 나는 다독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깊이 파고드는 책 한 권이 주는 깨달음은 미처 소화하지도 못하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10권의 책을 이해하게 한다.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 양응수, <독서법- 오직 독서뿐, 정민

 

가끔 우리 독서 모임은 소수의 인원으로 움직이는 특공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낭독 독서와 느린 독서를 한 지도 벌써 2년째다. 우리가 함께한 깊은 성찰의 시간은 내면을 변화시켰고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졌음을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한다.

 

모든 책을 느린 독서로 할 필요는 없지만, 충분히 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