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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화)

임지윤 작가 에세이

국가대표는 누구일까?


 

커피를 접하기 전에는 커피의 세계에도 대회가 있고, 국가 대표가 있고, 월드 챔피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올림픽에서 종목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와 메달을 위한 치열한 경기를 하듯, 커피에도 그런 대회가 매년 있다.

 

KBrC(브루어스 컵), KCIGS(커피 인 굿 스피릿), KCRC(커피로스팅 챔피언십), KCTC(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KLAC(라떼아트), KNBC(바리스타) 가 그러한 대회이다.

각 국가에서 열리는 이러한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면 국가대표 자격으로 월드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KBrC :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 중 브루잉을 통해 추출하는 대회

KCIGS : 커피와 스피릿(알콜)이 만나는 커피 칵테일 대회

KCRC : 로스터기로 최고 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기술을 볼 수 있는 대회

KCTC : 서로 다른 커피를 빠른 시간 안에 기술적으로 골라내는 대회

KLAC : 라떼아트를 통해 커피의 예술적인 표현을 강조하고 이를 알리는 대회

KNBC :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열정과 연결성을 찾아 에스프레소, 우유 음료, 창작 메뉴를 제공하는 대회로 바리스타의 프레젠테이션, 추출 기술, 서비스를 평가받는 대회

 

 

올 초, KCIGS 센서리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심사했던 선수 중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월드 대회에 참가하여 당당히 챔피언이 된 선수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니, 다시금 그날이 떠오른다.

 

차가운 바람이 따뜻한 술 한잔을 생각나게 하는 겨울, 그 해 부산에서 열렸던 KCIGS 대회.

한국 국가대표를 선발하기 위해 이틀에 걸쳐 예선전이 치러졌고, 6명의 선수가 본선에 올랐다.

본선에 오른 6명 중 그중 1명이 국가대표가 되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월드 챔피언이 된 것이다.

 

대회에서 본 많은 선수들 중 그 선수를 생각하게 되면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그와 나눈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 때문이다.

경기 시작 전, 그는 심사위원인 나에게 “떨리십니까?”라고 물었다. 웃으며 고개를 젓는 나에게 “저는 떨립니다”라고 말하며 몸을 옆으로 돌려 긴 숨을 내쉬었다.

비장한 표정에서 지난 시간 연습했던 날들이 보이는 듯했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긴 호흡 속에 대회를 준비했던 지난 시간, 다짐을 내뱉듯 그는 “타임”을 외쳤다.

 

시연이 시작되자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막힘없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음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선수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경기 시간 내내 지속되었다.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설명하는 음료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과 달리 경기 내내 떨리는 손은 대회 경험이 적은 선수로 보였다.

시연을 끝내고 평가지를 채워나가는 심사위원의 손끝에 집중하던 그의 눈빛 속에 시연 시간 내내 떨었던 본인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선수의 시연이 끝나고 백룸에 들어가 헤드심사위원, 다른 센서리 심사위원, 쉐도우저지와 함께 선수에 대한 평가를 마저 이어간다. 다른 심사위원들과 평가를 하며 ‘이 선수도 본선에 진출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밤이었다.

 

 

다음날, 본선 심사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배정되었고, 나는 이 선수의 본선 무대를 심사위원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싶었다. 관객석에서 본 선수의 모습은 심사위원석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대회의 목적에 맞춰 준비된 콘셉트와 음료에 대한 막힘없는 설명,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와 시연 모습에 빨려들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심사위원석에서 보이던 그의 떨리는 손은 먼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관객의 입장에서 본 그 모습에 선수가 제공했던 음료의 맛을 떠올려보았다.

 

‘아~ 이 선수가 국가대표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심사위원과 관객.

누가 더 많이 알까?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알고 공정하면 심사를 잘하는 것일까?

심사해야 할 항목에 집중하며 내가 알고 있는 틀 안에서 선수를 보았던 심사석에서의 나와 관객석에서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전문가로 심사석에 앉으면 점수와 코멘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규정의 틀, 나의 틀에서 선수를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음료의 향미에서 놓치는 부분이 나오지 않도록 많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세상은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각자의 틀과 지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라고 확신하고 다른 이를 판단한다면 상대는 틀릴 수밖에 없다. 커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체크리스트에 맞춰 채점하려는 정량적인 심사위원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관객의 눈으로 보였다면 그건 정성적인 부분이 보였던 것이었으리라. 자신감에 찬 모습과 시연에 몰입하는 그의 눈빛과 태도에서 함께 느꼈던 몰입과 열정, 희열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정답이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정과 희열은 정답이라 할 수 있는 정량의 틀로 측정할 수 없기에. 그러함에 세상살이에 답이 없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