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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7 (수)

임지윤 작가 에세이

쿨링 - 멈추어야 할 때


“아직 부족해요. 충분하지 않아요.”

시험을 앞두고 긴장과 불안에 여유가 사라진 수강생들의 표정 사이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이 멈춘다. ‘부족’이라는 단어 앞에 나 역시 조용히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늘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조금 더 노력하면, 더 오래 참고 버티면, 더 많이 이해하면,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하고, 늘 그래야만 한다는 전제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참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더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더 해야 한다’는 말은 넘치지만,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는 말은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지나치게 버티고, 지나치게 이해하려 노력하며 결국 스스로를 태워버린다.

꼭 배출할 시점을 결정하지 못해 로스터기 안에서 뜨거운 열기에 태워지는 생두처럼...

 

‘멈춤’ 역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자주 잊는 나에게 커피는 항상 조용히 말한다.

 

“멈춰야 할 때를 모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커피에서의 멈춰야 할 때는 로스팅의 마지막 단계, 로스팅의 종료를 알리는 배출 시점과 쿨링 단계이다.

이 두 단계는 커피의 최종 향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이다.

로스팅 과정에서 발현된 풍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출 시점, 로스터기 안에서 원두를 나오게 해야 하고, 200°C 가 넘는 원두를 빠르게 쿨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원두 안에서 일어나던 화학반응이 멈춰지고, 최상의 향미가 그대로 그 안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이때를 놓치면 로스터기 안, 뜨거운 열기에 발현되었던 커피 본연의 향미는 사라지고, 로스팅 과정에서 애써 쌓아온 맛들은 전혀 다른 맛으로 변하게 된다.

 

적절한 시점에 멈추는 것.

 

배출구를 열어 원두가 쿨링팬으로 쏟아지게 하는 로스터의 손, 그것은 단순한 중단이 아니라 커피의 완성을 위해, 커피가 최상의 향미를 담도록 하는 로스터의 태도다.

 

그리고 삶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이쯤이면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꾸만 ‘더’라는 이름의 열기에 스스로를 내던지게 된다.

 

하지만 진짜 완성은 그만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오지 않을까?

커피가 쿨링팬 위에서 화학반응을 멈추고 본연의 향미를 가두어두듯, 우리도 그렇게 삶의 열기를 멈추어 식히고 쉬며, 다시 숨을 고르면서 각자의 삶의 향을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그 멈춤은 나약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며, 내가 나를 지켜내기 위한 태도이기에 그러하다.

 

‘더’라는 열기 속에 갇혀 있는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멈추어도 괜찮아요. 당신은 충분해요.”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