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는 어려서부터 수영에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해병대 복무를 했기 때문에 물이라면 걱정이 없는 친구였다. 그런 그가 한 번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동해 바닷가에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약간의 풍랑이 일고 일기가 순탄치 않았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검푸른 바다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마터면 불귀의 객이 될 뻔한 사고는 그날 일어났다.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이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동료들은 그가 장난을 하거나 유영(遊泳)하는 줄 알았다. 설마 그가 곤란을 당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이다. 이상한 낌새를 채고 가까스로 물밖에 끌어냈을 때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사지를 주물러 겨우 살려 냈을 때 그는 그 순간을 술회했다.
눈앞에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거리며 지나가는데 한 뼘만 더 접근하여 작살을 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더란다. 그러나 한 뼘을 다가가면 물고기도 한 뼘을 달아나고 또 한 뼘을 접근하면 물고기도 한 뼘을 달아났다. 그러나 친구가 정신없이 물고기를 쫓고 있을 때 물고기는 수평으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물속으로 점점 하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숨이 차올랐으나 물고기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바람에 참고 또 참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는 순간 올라가야할 수면은 너무 멀리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은 찰나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었으나 숨을 갈아 쉬는 그 순간 파도가 밀려와 얼굴을 덮쳤다. 물을 들이키고는 스스로의 통제력을 잃고 말았다. 손바닥 만 한 물고기 한 마리 때문에 목숨을 일을 뻔했다고 지금도 진저리를 친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렇다. 금방 일확천금이 생길 것 같고 횡재가 눈앞에 있는 것 같으나 신기루일 뿐이다. 원하는 것이 쉽사리 손에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더 갖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멈추지를 않으니 득롱망촉(得隴望蜀)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후한의 광무제가 농나라를 얻고 나자 촉나라까지 탐을 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짜 치즈는 쥐 덧에만 있다’는 외국 속담이 있지 않은가? 탐욕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우리를 곁길로 이끌 것이다.
톨스토이의 민화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파홈이라는 농부가 땅을 한 평이라도 더 얻기 위해 뛰다가 죽는 이야기이다. “이튿날 아침, 파홈은 악몽을 꾼 것을 찜찜해하면서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출발한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기름진 토지들을 보게 되고, 이것들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마지막 순간에 파홈은 거추장스러운 신발과 옷도 전부 벗어던지고 젖먹던 힘까지 내어 달려 시작 지점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지나치게 몸을 혹사시킨 나머지 그대로 넘어져 피를 토하며 즉사한다. 그리고 이를 본 악마는 통쾌하게 웃는다. 죽기 직전의 파홈에게 엄청난 땅을 얻었다고 축하를 해 주던 바시키르인 촌장을 옆에 둔 채, 파홈의 하인은 죽은 주인을 묻을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설은 다음의 해설과 함께 끝이 난다. 농부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그가 묻힌 3아르신(2미터) 크기 만큼이었다.” 무리하다가 죽은 사람이 파홈이 처음은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등산가들 특히 히말라야와 같은 고봉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하산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한다.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다 해도 욕심을 부리다가는 생명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바둑의 고수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잘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돼 가는 것이다. 하수들은 하찮은 것을 버리지 못해 소탐대실(小貪大失)하게 되고 형국을 그르쳐서 종국에는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게 (生不如死)되지만 고수는 반대로 하찮은 것을 주저함 없이 버린다. 사람에게는 결국 묻힐 만큼의 땅만 필요하다. 정권 연장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비명횡사한 지도자도 있고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는 지도자도 있다. 좋은 자동차란 외관도 중요하고 사양도 중요하지만 제동이 잘 되는 자동차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