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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4 (화)

김연희 작가 에세이

가장 소중한 선물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에어컨인 것 같다고 했을 때, ”뭐 그렇게까지.”라며 흘려들었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여름이다. 이 끔찍한 더위에 에어컨에서 쏟아지는 냉기는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지만, 쉬지 않고 윙윙대는 소리는 늘 귀에 거슬린다.

 

어느 날 에어컨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다. 시끄럽고 귀찮은 것이란 마음을 내려놓고 소리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러자 그때부터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름의 리듬이 느껴지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때는 마음으로만 듣지 말고 몸 전체로 들으십시오. <중략> 그러면 생각으로부터 주의력이 돌려져서 마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문득,

"나는 과연 어떻게 듣고 있지? 집중해서 듣고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함께 모여 낭독 독서를 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읽어내려가는 책을 귀로는 듣고 눈으로 함께 읽어 내려간다. 곧 소리보다 눈에 의지해 글을 읽고 귀로 전해지는 문장들은 어느새 들렸다 말았다 한다. 그마저도 금세 집중력이 흩트려져 다른 생각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린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시각적인 방해를 받지 않으려 눈을 조용히 감고 청각에 의지해 책을 듣는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몇 년을 함께한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낯선 이의 목소리를 듣는 듯 새롭다.

 

"이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깊었나? 원래 낭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구나. 전달력이 좋았었구나.“

 

몸 전체로 듣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난 상대에게 귀를 활짝 열어 들었고 집중했다.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서두르지 않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호흡을 맞춰 나간다. 그 순간 참 편안함을 느꼈다. 비로소 상대에게 내어주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었을까?

 

 

이 일은 책을 소리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억에 남을까 싶어 오디오북을 잘 사용하지 않던 내게 편견을 깨는 작은 경험이었다. 그 후에도 가끔 눈을 감고 생생하게 전해지는 소리에 의지해 글을 듣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조금씩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집중해서 들어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번번이 상대의 말을 듣는 중에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집중력이라는 게 순식간에 흩어지고 생각이란 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올라온다. 그러니 진심으로 누군가의 말을 온몸으로 들어준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난 단지 진심으로 들어주는 연기를 잘하고 있지는 않을까 의구심을 갖기까지 할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듣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톨레가 이야기하듯 몸 전체로 듣고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줄 때 상대방도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오늘 만나는 이들과 그런 하루였으면 좋겠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