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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6 (화)

공투맘의 제2의 인생극장

사랑 확인의 도구, 핫도그


첫째를 임신하고, 남들은 힘들어하는 입덧이라는 걸 거의 하지 않고 보냈다. 주위에서는 모두 복이라고 했고, 나 역시도 힘들지 않았으니 배 속에 아기가 복덩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에게도 먹고 싶은 것이 생각이 났다. 핫도그! 시장이나 분식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 핫도그가 너무 간절했다.

 

“자기야, 나 핫도그 먹고 싶어.”

“내가 퇴근할 때면 가게들이 다 문을 닫을 텐데….”

 

학원 강사였던 남편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야 퇴근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가게 문을 닫았을 줄 알면서 이야기를 한 터였다. 그저 드라마에서만 보던 입덧을 핑계로 사랑을 확인하는 절차를 그 당시에 나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비슷한 무엇이라도 사서 올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잠이 쏟아져 꾸벅꾸벅 졸면서도 꾹 참고 남편을 기다렸다.

 

“딸깍”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고 반갑게 맞이하러 뛰어갔는데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핫도그….”

“가게 문이 안 열려 있잖아.”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야속한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돌아섰다.

 

지금이야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하는 남편이지만, 그 당시에는 슈퍼맨만큼이나 멋지고, 세상을 다 가져다줄 것만 같았던 젊은 그가 보인 반응에 내 마음은 길을 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날 친정 언니에게 하소연하니 출근길, 조카에게 돈을 쥐여주며 이모랑 같이 핫도그를 실컷 사 먹으라고 전했다. 어린 조카와 분식집에서 설탕과 케첩을 잔뜩 묻힌 핫도그를 들고서 집까지 룰루랄라 걸어오며,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때는 그저 잠시 서운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줄 알았던 그 사건은 “임신했을 때 잘못하면 평생 간다.”라는 농담처럼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안 보이는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아이가 좀 컸을 무렵 남편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모임을 했다. 다들 대학 초년생 때부터 봐 왔던 사람들이라 남편 친구이지만 내 친구나 다름없었다.

 

“내가 임신했을 때 핫도그 하나, 그거 하나 먹고 싶었는데 가게 문이 닫혀있다고 안 사 오더라고. 다른 거라도 사 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야, 인마! 그럴 때는 편의점에 있는 냉동 핫도그라도 사 왔어야지. 센스가 없네!”

 

우리 부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무심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툭 던진 남편 친구의 그 한마디에 결국 아무렇지 않은 듯 숨겨 놓았던 내 마음에 바늘이 되어 콕 찔렀다. 순간 서러움이 복받치기 시작하면서 눈물도 나고, 화도 났다.

 

그 이후로 부부싸움을 소소하게 할 때면 늘 그 핫도그 이야기가 나왔고, 심지어 첫째 아이에게도 하소연할 추억거리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핫도그는 아이들의 아침 식사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 당시 냉동 핫도그를 생각하지 못해 잊을만하면 죄인이 되는 남편은 지금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사랑의 핫도그를 사다 나르고 있다.

 

별것 아닌 먹거리이지만 그것으로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나였다. 아기를 가지고 달라져 가는 내 모습에 남편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까 내심 두려운 감정이 있었나 보다. 워낙 자상하기로 유명했던 남자이기에 드라마 남자 주인공들처럼 내가 감동할 사건들을 빵빵 만들어 줄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절실히 느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사소한 핫도그 사건 없이 무난한 임산부 시절을 보냈다면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서운하게 하는 감정은 큰일로 오지 않는다. 도리어 감당할 수 없는 큰 사건은 빨리 단념하게 되거나 화를 크게 내고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화를 내기도 뭐하고, 그냥 넘어가기에도 애매한 상황들이 서운함을 가득 채운다.

 

그냥 “나 그때 서운했어.”라고 편하게 이야기했더라면 되었을 일들을 괜히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다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그렇게 따끔따끔 아팠다.

 

나도 나를 알지 못하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내 감정을 상대방이 쉽게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응, 말해야 알지!”라고 답하고 싶다. 그러니 시시콜콜한 더 오해가 쌓이기 전에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도 부족할 한 세상, 서운함에 묻어 놓은 채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은 언제라도 먹고 싶으면 사서 먹을 수 있는 핫도그, 오늘은 설탕을 가득 묻혀 사랑하는 남편과 한 입씩 나누어 먹어 보면 좋겠다. 얼굴에 설탕이 묻은 모습에 서로 깔깔거리며 웃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 영원하지 않을 인생의 한 페이지에서 우리만의 추억 속 핫도그와 함께 말이다.


 

 

◆ 약력

· 공투맘의 북랜드 온라인 커뮤니티 대표

· 행복학교 자문위원

· 작가

· 온라인 리더 전문 교육 강사

· 2025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