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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 (수)

임지윤 작가 에세이

스모키한 향기 속에 숨겨진 시간들


 

“강사님! 오늘 너무 추워요!”라며, 몸을 잔뜩 움츠리고 강의실로 들어서는 수강생,

“오늘 날씨 너무 춥죠? 어제도 추웠는데 오늘도 춥네요. 우리 따뜻한 드립커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할까요?” 라는 질문에 “좋아요.”라는 답이 이어진다. 엊그제 로스팅한 과테말라 원두를 그라인딩한다.

분쇄된 원두가루에서 스모키한 향이 퍼지고, 뜨거운 물이 원두가루를 적시며 과테말라 커피가 서버에 담기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3월의 추위, 주말 아침을 움츠리며 학원으로 왔을 수강생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에 공감이란 마음을 녹여 정성스레 물을 부어준다.

스모키한 향에 18세기 후반 과테말라 커피 역사의 시작이 코끝을 스치듯 다가온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스모키한 향과 묵직한 바디로 사랑받는, 스페인 식민지 수도원 정원에 재배되던 작은 커피나무가 과테말라 전체를 대표하는 산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과테말라의 커피는 18세기 후반, 예수회 수도원의 정원에서 관상용, 약용으로 재배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과테말라 고지대의 기후와 토양이 커피 재배에 이상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세기 중반 본격적으로 재배가 확산되며 상품 작물로 전환되었다.

1800년대 중후반, 과테말라 정부는 천연 염료 산업이 몰락하자 새로운 수출 작물로 커피를 선택하였고, 국가 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커피 농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대규모 토지 소유를 허용했기에, 플랜테이션(plantation) 중심의 커피 산업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정부가 단행한 토지 개혁과 커피나무 재배가 산업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원주민 공동체가 소유했던 토지가 몰수되었고,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에서 밀려나 지주의 농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커피를 수출하기 위해 철도와 항구 같은 인프라가 확충되고, 안티구아와 우에우에테낭고 같은 과테말라의 주요 커피 재배 지역이 이 시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테말라 커피를 마시며 느껴지는 스모키한 향과 묵직한 바디감은, 비단 향미 때문만은 아니다.

그 향미의 안에는 고도가 높은 화산 지대, 스페인 식민의 그림자, 그리고 빼앗긴 토지에서 노동자로 전락해 커피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의 숨결과 시간이 켜켜이 녹아 있기에 그러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해발 1,500m 이상의 고도의 가파른 경사에서 커피 열매를 손으로 수확하고 세척해 건조하는 일. 커피 한 잔에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땀과 손으로 만들어 낸 맛이 담겨 있기에, 커피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는 공정무역(Fair Trade), 직거래(Direct Trade), 여성 농부 중심의 소규모 농장 구조 등 다양한 긍정적인 움직임들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과 더불어, 커피는 단순한 생산물이나 상품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라는 인식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우리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건, 인프라의 발달이나 운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빼앗겼던 땅과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내 손에 들린 과테말라 커피 한 잔은, 그 시간을 마시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추위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서서히 녹여 주는 묵직한 과테말라 커피.

 

그 향미에 담긴 것은 어쩌면 마야계 원주민들의 마음과 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 마신 커피 한 잔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이해를 만들고, 그 이해는 공감을 낳는다. 그리고 그 공감이, 커피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날이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