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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8 (목)

최홍석 칼럼 - NEST(둥지)

민수(가명)라는 아이와 속엣 말을 하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는 장래 희망이 무엇이야?” “경찰이요.” “아, 그래. 특별히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느냐?” “아버지를 잡아 가둘 거요.” “.....” 아이는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이마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학원을 안 갔다고 골프채로 맞아 이마가 쪼개지다시피 한 흉터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맞은 기억만 있다고 했다.

 

민수는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드물게 보는 힘든 아이였다. 담임과 상담교사와 교감을 거쳐 나한테까지 왔다. 부모에 대한 강한 증오와 열등감으로 뒤틀려 있었고 외모 콤플렉스로 사시사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이었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력감뿐이었고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아 모든 선생님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은 내가 동의하면 자퇴를 하는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무동력선을 보는 듯 했다.

 

나는 민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네가 너무 힘들어하니 하루에 한 시간은 아무 조건 없이 내 방에 와서 쉬게 해주마. 내가 교과 선생님께는 상담을 한다고 해 줄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도 수학도 아니고 그저 숨통을 트는 것이었다. 아이는 반신반의 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하고 돌아갔으며 매일 나를 찾아왔다. 주로 수학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이 두어 주가 지났을 무렵 그냥 잠을 자거나 멍 때리고 있지 말고 재미있는 글이라도 읽으라고 쉬운 동화부터 소설이나 수필 같은 것을 주었다. 아이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았다. 서두에서 말한 장래 희망 이야기를 한 것도 석 달 쯤 지나서였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합창단에 서 있는 민수를 본 것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감동이었다. 아이는 무사히 졸업을 했다.

 

민수 말고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아이들은 여럿 있었다.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상담 기법도 잘 모른다. 그저 죽을 것 같은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둥지를 빌려주고 싶었다.

 

 

 

“야, 교장도 할 만하네요! 에어컨도 빵빵하고 소파도 있고... 소파에서 한숨 자다가 심심하면 컴퓨터도 하고...” “너한테는 그림의 떡이야 임마” “왜요? 나도 교장하면 되지” “너는 죽었다 깨나도 안 돼. 교장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아?” “사람을 무시하고 그래요? 내가 나중에 교장 되면 어쩔래요?” “자신이 있으면 내기를 하든가” “좋아요. 나중에 봅시다.” 이 녀석들은 벼라 별 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냉장고도 무시로 뒤지곤 했다.

 

“선생님, 집에다는 오늘 우리가 몇 시에 도착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차 속 애걸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애절하다. “아니 왜?” “학원가야 해요.” “아니 오늘 같은 날도?” “학원이 열한 개거든요.” “아니 과목이 몇 갠데 학원이 열한 개란 말이냐?” “국, 영, 수, 과는 두 개씩 다녀요.” 아이들도 안다. 우리가 운동장에 도착하기 전 엄마들은 이미 차에 시동을 켜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축구 리그를 만들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대진표에 따라 반별 리그전을 하고 성적을 누적하여 연말 4강 토너먼트를 한다. 많지는 않으나 우승 상금도 주었다. 많은 부모들과 교사들은 우려를 했다. 인문계 학교에서 진학 준비에도 모자랄 판에 축구라니, 교장이 큰 실수를 한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결석도 없어지고 중도 탈락자도 현저히 줄었다.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운동을 했고 피시방 출입도 줄었다. 단합도 잘 되었고 부모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들은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린단다. 공부를 못해 기가 죽어 있던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겼고 그뿐 아니라 진학 성적도 역대급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9회 말 투 아웃에 만루- 공 하나에 승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한 점차로 이기고 있는 팀의 투수는 홈 팀 관중의 야유와 함성 때문에 좀처럼 투구를 못하고 있다. 이 때 감독이 마운드로 내려가 한 마디 하고 엉덩이를 툭 치고 돌아왔다. 이에 힘을 얻은 투수는 신들린 듯한 투구로 삼진을 잡아내고 승리를 했다. 기자들은 투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당연히 절체절명의 순간 감독의 사인을 물었고 투수는 웃으며 “내일 날씨가 좋으면 낚시나 가자고 하셨습니다.” 모두 명장의 기지(奇智)에 혀를 내둘렀다. 그 순간 어깨에 중압감을 더하는 작전이 무에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옥죄어 오는 숨통을 트이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