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항해와 망망대해에 지친 1등 항해사는 어느 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여 근무 중에 술을 한 잔 마셨다. 하필이면 그 때 그것을 목격한 선장이 항해일지에 “오늘 1등 항해사는 근무 중 술을 마셨다.” 라고 적었다. 항해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선장은 자신이 없는 사실을 적은 게 아니라면서 끝내 기록을 지워주지 않았다. 며칠 후 선장의 근무 날이 되자 항해사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선장은 근무 중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선장은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다. “이게 뭔가! 다른 근무 때는 내가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항해사는 대답했다. “나는 사실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말은 묘한 힘을 가졌다. 단어 몇 개를 추가하거나 빼버리면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하고 앞뒤를 바꾸어도 전혀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말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치는 동안 착각이나 의도에 의해 자꾸 변하고 부풀려진다. 그래서 종착지에 도달할 즈음에는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말로 인한 화가 개인의 생에서부터 가족이나 국가에 미치고 인류의 역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내가 담임을 했던 여학생 중 의대를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간 제자가 있다. 의사라는 직업이 늘상 피를 보고 수술을 하고 다양한 환자를 상대하는 일이지만 국과수는 주로 시신을 상대하는 일이라 끔찍한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나는 걱정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아이에게 왜 하필 국과수를 지원했느냐고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담담히 대답했다. “시신은 무섭지 않은데 거기서 나오는 벌레는 무서워요.” 이유인즉 시신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지만 벌레는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구나, 죽은 사람은 해를 끼치지 않는구나, 온갖 모함을 하고 험담을 하며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로구나.’
선조들은 인간이 범하는 죄가 10이라면 그 중 9는 입으로 짓는 죄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과 많은 성현들이 침묵을 강조했으며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도 말에 관한 경구(警句)들이 많이 있다. 불경에도 ‘정구업진언 (淨口業眞言)’이란 것이 있고 성경도 솔로몬의 잠언을 비롯한 모든 책에 “말” “입” “혀”에 관한 경구를 많이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다(약 3:2). 심지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말의 폐해를 얼마나 실감했던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언어를 사용하라고 했다. “복음을 전하라.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라”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에 길이가 800km에 달하는 ‘토로스(Toros)’ 산맥이 있는데 터키 서남부 지중해 기슭과 나란히 동서로 뻗은 산맥으로 영어로는 타우루스(Taurus)로 표기한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다니던 곳이다. 그런데 이 험준한 산맥에는 독수리들의 집단 서식지가 있고 그들은 이 산맥을 넘는 두루미들을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두루미들은 하늘을 날면서도 쉴 새 없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때문에 독수리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편안히 쉬다가 두루미 떼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날아올라 낚아채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나이가 들고 노련한 기러기는 절대로 잡히지 않고 어리거나 아직 젊은 두루미들만 잡힌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젊고 경험이 없는 두루미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본성을 이기지 못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반면 노련한 두루미들은 산을 넘기 전에 조약 돌 하나를 물고 산을 넘어서 무사히 위험지역을 통과한 다음 돌을 버린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 몸에서 가장 느슨해지기 쉬운 나사는 혀를 제자리에 묶어두는 나사라고 한다. 혀를 재갈 물릴 수 없다면 두루미처럼 종일 조약돌이라도 물고 지내야 할까보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거든 최소한 험담만이라도 하지 말라.” 는 격언을 되새겨 본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