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15.1℃흐림
  • 강릉 15.7℃흐림
  • 서울 16.5℃흐림
  • 대전 19.4℃흐림
  • 대구 19.1℃흐림
  • 울산 19.5℃흐림
  • 광주 22.1℃흐림
  • 부산 21.7℃흐림
  • 고창 23.2℃구름많음
  • 제주 26.3℃맑음
  • 강화 15.4℃흐림
  • 보은 18.0℃흐림
  • 금산 19.7℃구름많음
  • 강진군 23.0℃흐림
  • 경주시 18.6℃흐림
  • 거제 21.8℃흐림
기상청 제공

2025.10.28 (화)

[특별 기고] 점수가 아닌 가능성을 보는 교육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한때 우리 교육 현장에는 ‘모든 학생은 가능성이 있다’는 숭고한 교육 철학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특정 과목에 유독 강하든 약하든,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이 가능성의 불씨를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임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바로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라는 정겨운 평가 방식이 있었다. 단순히 우열을 가리고 줄을 세우는 오늘날의 상대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수(秀)'는 빼어나고, '우(優)'는 뛰어나며, '미(美)'는 아름답고, '양(良)'은 좋고 어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可)'는 단순히 '수(秀)' 아래의 등급이 아니라, '옳을 가(可)', '할 수 있다'는 뜻처럼, 아직 부족하더라도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가(可)'를 받은 학생에게조차 “너는 아직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따뜻한 격려와 믿음을 주었던 평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 어떤 제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스승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당시의 교사들은 마치 한의사의 마음처럼,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 상태와 학습 과정을 세심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처방을 내리며, 기어코 아이가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옆에서 지탱해 주고자 노력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효율과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수우미양가'는 점수 위주의 평가 시스템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를 잊지는 않았을까? 바로 '모든 아이는 저마다 빛깔이 다르다'는 진실이다. 어떤 아이는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고, 다른 아이는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하며, 또 다른 아이는 남을 보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 줄로 세워진 점수표만으로는 이처럼 다채로운 재능과 잠재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끝없는 불안감과 좌절감만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교육은 경쟁을 넘어선 곳에 있다. 그것은 모든 학생에게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개개인의 속도와 방식으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다. 학업적 성취뿐만 아니라 사회성, 창의성, 공감 능력 등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다양한 역량을 골고루 키워주는 전인교육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하는 아이를 다그치기보다는 묵묵히 기다려주고, 작은 성취에도 진심으로 격려하며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꿈을 키우며, 세상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획일적인 기준 아래 평가받으며 빛깔을 잃어가서는 안 된다. 교사는 아이들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과 지혜를 쏟아부어야 한다. 교육정책은 단 한 명의 학생도 소외되지 않도록 촘촘하고 따뜻한 지원망을 구축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조급하게 보채기보다 믿음과 기다림으로 함께해야 할 것이다.

 

'수우미양가'가 상징했던 따스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모든 아이가 점수가 아닌 '나'를 키우고, 자신만의 빛깔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수우미양가'에 따르면 나쁜 학생은 없다. 모두 훌륭하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일 뿐이다. 모든 아이는 소중하며, 모든 아이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시 전형을 앞두고 만족하지 못할 학생부 점수 때문에 스스로 비관하는 수험생들, 그런 자녀를 몰아세우는 학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몰아세우기 보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은 어떨까.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채우면 된다.

 


 

최승호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

서울삼육고 교사

원주삼육고 교사

동해삼육고 교사

서울삼육고 교장

학교법인 삼육학원 상임이사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