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의 단군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일궈낸 동력은 뭐니해도 단연 '교육'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부모 세대의 뜨거운 교육열은 국가 발전의 엔진이었으며, '하면 된다'는 정신은 일찍이 한강의 기적을 성취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듯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 물질적 풍요의 정점에서 우리 교육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기괴한 역설에 직면했다. 이는 혹자들이 비난하듯 결코 자기비하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9~24세)의 사망 원인 1위는 11년째 '자살'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정작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은 과도한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정신적 피폐함으로 스스로 생을 등지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역사상 가장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났음을 재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감사함'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환경에서 작은 성취는 무감각해지고, 타인과의 경쟁을 위한 끝없는 비교를 통해 '더 높은 곳'에 대한 갈증만이 남았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저서 『선택의 패러다임(The Paradox of Choice)』에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불만족과 무력감을 느낀다고 경고했다. 우리 교육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교육 선택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갖지 못한 것, 도달하지 못한 점수에 매몰되어 '정신적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높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의 만족도 및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정서적 상태는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이 그 방증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획기적인 전환점은 바로 ‘감사’ 기반의 인성 교육에 있다. 이는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라는 추상적인 훈계가 아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조건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타인과 환경의 도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구체적인 '마음 근육' 단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례1: 로버트 에먼스 교수의 감사 실험>
감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에먼스(Robert Emmons) 교수는 대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매주 한 그룹은 감사한 일을, 다른 그룹은 불평거리를, 마지막 그룹은 일상적인 일을 적게 했다. 10주 후, 감사 일기를 쓴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삶에 대한 만족도가 25% 높았으며, 운동 시간도 늘어나는 등 신체적 건강까지 호전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례2: 국내 초등학교의 '감사 비타민' 프로그램>
국내 일부 교육 현장에서 도입한 '하루 5가지 감사한 일 쓰기' 프로그램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경쟁의 대상이었던 친구가 '내 질문에 답해준 고마운 존재'로 변모하자 교내 폭력이 줄어들고 학습 몰입도가 향상되었다. 이는 ‘감사’하는 마음이 타인과의 '연결감'을 회복시키기 때문이었다.
경쟁 교육은 필연적으로 '나의 성공'을 위해 '너의 실패'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감사는 '상호 의존성'을 깨닫게 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옷, 먹는 밥, 공부하는 교실 등이 수많은 타인의 노동과 헌신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은 고립된 경쟁자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성공 지상주의 교육이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가르쳤다면, 감사 교육은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비극적 지표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교육 당국과 학교 현장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감사 리터러시’의 교과 통합이다. 국어, 도덕 수업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내가 배운 지식이 인류의 어떤 헌신에 기반했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둘째, '감사 기록'의 생활화이다. 성적표 옆에 '이번 학기 내가 가장 감사했던 순간'을 적는 칸을 마련하자. 수치화된 등수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느끼는 삶의 충만함이다.
셋째, 가정-학교 연계 프로그램이다. 부모가 먼저 감사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보고, 듣고 배운다. 예컨대 '가족 감사 대화의 날'을 통해 가정 내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은 어떤가? 사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위험한 시대, 오늘 하루 살아서 기쁨과 만족, 감사를 느끼는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주지하는 것처럼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E-duce', 즉 내면의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는(引出)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지식의 축적'이라는 밖으로부터의 주입에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아이들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감사의 씨앗'을 끄집어내야 한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멈춰야 한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어떤 시련 앞에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감사는 단순한 예절 교육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시급한 시대적 과제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