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고전 『일리아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었고, 영화팬들의 호기심 만족을 위한 영화 <트로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 중에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춘 한 장면이 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무릎을 꿇는 장면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 체면을 내려놓았고, 분노에 사로잡혔던 영웅은 복수를 멈추었다. 그 결과 12일간의 휴전이 이루어졌다. 이에 고전의 원전과 영화를 근거하여 진정한 엘리트란 누구이며 왜 그런지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엘리트’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명문대 졸업장, 고시 합격, 화려한 경력은 곧 능력의 증표로 간주된다. 정치권과 고위 관료 집단은 우리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최상위 엘리트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분명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치열함이 과연 공동체를 위한 책임 의식과 도덕적 절제까지 길러냈는가?
최근 수년간 급속히 냉각되어 온 정치적 갈등과 정책 혼선, 책임 회피와 진영 논리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보여준 민낯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는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굴복시키려 하고,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방어에 급급하며, 공공의 이익보다 조직과 진영의 이익을 앞세우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우리 교육이 길러낸 인간형의 결과라는 사실에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선발’에는 탁월했지만 ‘성숙’에는 인색했다.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 남보다 앞서는 전략, 실패하지 않는 계산법은 체계적으로 훈련했지만, 권한을 가졌을 때 스스로를 절제하거나 대화와 타협에 이르는 방법은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다. 성취는 강조했으되 책임은 체화시키지 못했고, 경쟁은 극대화했으되 공감은 부차화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용기는 패배를 인정하는 용기였고, 적장 아킬레우스의 결단은 힘을 내려놓는 용기였다. 그들은 전사였지만 동시에 인간이었다. 반면 오늘의 최고 엘리트 중에는 ‘이기는 법’에는 능숙한 전사지만 ‘멈추는 법’에는 서툰 인간인 경우를 자주 드러낸다. 정책 실패에도 사과는 인색하고,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도 한 걸음 물러서는 결단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품성 문제를 넘어, 엘리트 양성 구조, 즉 우리 교육제도의 결함을 드러낸다.
입시 중심 교육제도는 학생을 끊임없이 서열화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된다. 상위권에 오르기 위한 전략적 사고는 강화되지만, 공동체적 상상력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된다. 이렇게 성장한 인재가 권력을 쥐었을 때, 국가는 또 다른 경쟁의 장이 되기 쉽다. 정책은 성과 지표로 환원되고, 국민은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제 우리 엘리트 교육의 핵심은 지적 우수성을 넘어 도덕적 상상력을 기르는 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공직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이자 부담이라는 인식, 권한은 행사할수록 무거워진다는 자각, 결정의 파장이 약자에게 더 크게 미친다는 감수성을 동시다발적으로 길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성적과 스펙으로만 엘리트를 정의하고, 인격과 공공성은 그저 사적인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은 아닌가?
그 결과, 가장 많은 교육적 자원을 투자받은 집단이 가장 큰 사회적 실망을 안기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도덕성의 위기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위기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누구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진 채,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만을 가르쳐 온 구조적 한계다.
고전 속 12일의 휴전은 인간 존엄에 대한 합의였다. 한마디로 왕과 적장의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상호 간의 겸손과 의리, 예절과 문화적 관행에 따른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우리 교육도 그런 합의를 회복해야 한다. 엘리트의 정의 또한 더 많이 아는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더 무겁게 책임지는 공적인 사람이라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시험 점수보다 판단의 품격을, 속도보다 방향을, 승리보다 신뢰를 중시하는 공교육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유능하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위험한 엘리트를 배출할 뿐이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누가 더 뛰어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성숙한가?”로 말이다.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가 보여준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의 힘이었다. 우리 교육이 그 힘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엘리트를 길러도 공동체는 안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교육받은 대로 이 사회에서 삶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의 위기는 곧 교육 그 자체의 위기를 반영한다. 이에 대한 성찰을 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절체절명의 과제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