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왜 오수재인가? 라는 드라마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인간을 변질시키는지, 성공하는 삶과 잘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연소득이 75,0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그 흐름은 멈춘다.” 2010년 미국의 경제학자 카네만(Kahneman)과 디턴(Deaton)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2023년, 카네만과 킬링스워스(Killingsworth)가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킬링스워스가 혼자서 2021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와 비슷해, 행복감은 소득 증가와 함께 계속 상승하고 정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에 발표한 연구를 근거로 하는 조사에는 킬링스워스가 개발한 앱이 활용되었다. 2010년 연구에서는 전화 조사로 조사 전날 상황에 대해 행복감을 느꼈는지 등을 조사 대상자에게 질문을 했다. 반면에 2023년 연구에서는 하루에 세 번 현재의 기분을 앱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전화 인터뷰처럼 과거의 감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지금 여기의
“나도 언니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얼마 전 신문에 연재된 내 글을 읽은 지인이 보낸 문자이다. 언젠가 통화를 할 때도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길래, “뭐라도 좋으니까 일단 써. 가장 접근하기 좋은 게 블로그인 것 같아. 닉네임으로 통하니까 네가 누군지도 몰라. 일기도 좋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점점 글쓰기가 익숙해질 거야. 편하게 접근해 보자.”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지인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나의 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쓰기는 무조건 쓰는 수밖에 없어. 매일 딱 한 줄이라도. 일단 시작해 봐. 그럼 고민의 내용도 달라질 거야.” 정말 이번엔 지인이 시작할 수 있을까? 일단 시작을 해야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일에 해당이 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저질러봐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나는 호기롭게 시작하고 중도 포기한 것들이 많다. 주변에선 내가 시작은 잘하는데 끝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남편과 어쩌다 자격증을 따겠다며 들인 시간과 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입 다물
며칠 전, 한 장의 명함을 받았다. 우연히 받은 명함에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향기였다. 코끝을 살포시 스치는 라일락 꽃향기가 명함 끝자락에서 느껴졌다. 그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찾아왔다.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나는데요.” “아. 제가 아침에 실수로 가방에 향수를 쏟았는데 그 향이 명함에도 스며든 것 같아요.” 실수로 쏟은 향수 때문에 명함에서 향기가 나는 상황이 되었지만, 명함의 향으로 이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명함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기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함을 보고도 상대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전해 받은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난다면, 그 대상을 좀 더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 용어 중에 각인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학자 로렌츠에 의해 유명해진 개념인데, 새끼 오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온 것이다. 새끼 오리들이 한 남성을 종종거리며 따라가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실험의 대표적인 결과이다. 로렌츠는 인공부화기에서 부화시킨 새끼 오리들이 태어난 순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마치 어미 오리처럼 따라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얼마 전 비 내리는 토요일. 지역에서 나름 알아주는 쌍화탕 조제 전문점에 들린 적이 있다. 맛을 보라며 따뜻하게 데워진 쌍화탕을 건네는 사장님의 얼굴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다. 컵을 두 손으로 꼭 잡는 순간 따스함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한 모금 마시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사르르 녹고 마음도 편안하다. 문득 건물 입구에서 촉촉한 5월의 비를 맞으며 탐스럽게 피어있던 작약꽃이 떠오른다. “작약이 활짝 폈어요. 이맘때가 꽃이 한창 필 때인가 봐요?” “그렇죠. 지금 꽃이 이쁘게 필 때죠. 쌍화탕에 작약 뿌리가 들어가요. 그래서 작약밭을 크게 하는데 꽃이 볼 만하죠.” 라고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엔 좋은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과 작약꽃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긴 것에서 오는 반가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보인 작은 관심은 의외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가게 여기저기에는 다양한 화초가 자라고 있었고 윤이 날 정도로 반짝이는 화초의 모습에 신기해하자, 사장님은 “좋은 약재 찌꺼기” 덕분이라며 웃으신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던지 “작약꽃 몇 송이 드릴까요?”라고 하시며 바깥으로 나가신다. 잠시 후 나는 보라색과 흰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약꽃 한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걸요.” 오늘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무엇인가 시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현실의 벽이란 경력, 학력 등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들로 인하여 원하는 분야로 진입이 어렵다는. 그래서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환경과 한계를 이야기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답답한 마음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곤충학자가 벼룩의 점프력을 확인하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가 넘는 높이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한다. 30cm 정도 높게 뛰어오를 수 있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고층 빌딩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이런 벼룩을 15cm 투명한 유리병에 넣고 덮개를 덮으면, ‘탁탁’ 소리가 들린다. 벼룩이 뛰어오르며 덮개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얼마 뒤, 그 소리는 멈추게 되는데 이때 학자는 신기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30c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벼룩이 덮개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15cm 높이로 일정하게 뛰는 것이다. 잠시 뒤 덮개를 제거했음에도 불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독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 이였지만 출퇴근 길, 전철 안에서 또 집에서도 자주 책을 읽으셨다. 게다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일 밤 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셨다. 몇 살까지 그랬는지 잘 기억이 못 되었지만 아마 초등학교 2,3학년까지 그러셨던 것 같다. 내가 유치원생 때, 밤에 아버지가 읽으신 동화책을 낮에 다시 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나도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도 계속 책을 읽어 주셨지만 3일에 한 번정도 퇴근 길에 나를 위해 책을 사 오셨다. 내가 전기와 세계 명작을 많이 읽은 시절은 바로 그 때다. 나의 생활 속에 늘 책이 있고 나는 독서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책을 읽어 주신 것도 책을 자주 사 오신 것도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돼서 매일 책을 읽어 주는 일이 얼마나 끈기가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매일 회사에서 다녀와서 피곤하셨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매일 나에게 책을 읽어 주셨고 나의 부탁을 거절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이 새로운 식당을 알게 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우리는 휴일 점심을 새로 알게 된 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한다. 아이는 기분 좋게 준비를 먼저 끝내고 엄마, 아빠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잠시 후, 나갈 채비를 마친 남편의 그 말만 없었다면 말이다. “○○는 가기 싫어?” 어쩐지 말이 퉁명스럽다. 핸드폰에 빠져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걸까? “아니거든.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표정이 굳어져 간다. 나를 향한 아이의 시선은 ‘내가 뭐?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라며 억울함을 담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와 아빠의 뒷모습이 편하지 않다. 남편과 잠시 떨어져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지금 기분 물어봐도 될까?” “아빠 때문에 기분이 별로야.” “그렇구나. 아빠 어떤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까?” “나는 가기 싫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싫었어.”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럼 아빠가 어떻게 말하면 좋았을까?” “준비 다 했어? 맛있는 식당
아침부터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다. 오랜만의 연휴라 가족들 모두 각자의 방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나 역시 이리저리 펼쳐놓은 책들이 가득한 책상을 내려다본다. 이틀째 그대로인 책 페이지며, 먼지가 내려앉아 걸레질을 해야 할 것 같은 탁상시계와 안경. 먹다 남은 커피.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지웠는지 하얀 책상 위에 뿌려진 지우개 조각들까지.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책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그런데 덩달아 지저분한 책상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짜증 어린 감정이 올라왔다. ‘마치 정리되지 못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내 나는 창문을 열고, 걸레를 챙겨 책상과 선반을 닦기 시작했다. 읽기 위해 꺼내 두었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들은 책장으로, 흩어져 있던 물건들은 서랍 속으로 정리했다. 남겨진 책들은 크기별로, 자주 보아야 하는 순으로 두고, 마지막으로 볼펜꽂이에서 잘 나오지 않는 볼펜들을 하나씩 살폈다. 책상을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일본 영화 “PLAN 75”를 보았다. 75세 이상의 성인이 스스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된 가까운 미래 일본을 무대로 자기 삶의 행방에 고민하는 고령자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뉴욕의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08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당시 일본에 자기 책임론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풍조가 해마다 심해져 살기 힘들다고 느끼던 차에 2016년 일본 사가미하라에 있던 장애인 시설에서 간호하던 남성이 시설 안에 서 살고 있던 장애인들을 죽인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 만연한 비관용적 분위기에 대한 분노'가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며, '가치 있는 생명'과 '가치 없는 생명'이라는 구별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회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영화로 물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75세 이상의 노인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설정이다. 이런 일은 영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지, 아무리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월말이면 커피 쿠폰 도착을 알리는 문자가 온다. 유일하게 참여하는 ‘매일 독서 30분’ 챌린지에서 매달 완주자에게 선물로 지급하는 것이다. 책 읽기 습관을 들여볼 생각으로 월 회비 5천 원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다. 덕분에 매일 30분이라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한데, 선물까지 받으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매달 느낀다. 이런 선물이라면 누구든 받고 싶지 않을까? 요즘은 감사한 마음,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가장 획기적인 건 속도가 아닐까 한다. 몇 번의 손놀림으로 어느새 누군가에게 쿠폰이라는 형태로 선물이 도착해 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가끔 소포 상자를 들고 우체국을 드나들던 아날로그 시대의 정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선물과 편지지를 고르는 시간을 즐기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다. 벌써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려나.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종이 신문이 보편적이던 시절. 결혼을 앞둔 지인에게 어느 해 보다 의미 있는 생일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엉뚱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