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0 (금)

'응?'의 변화가 주는 교육학적 의미

 

붉은 해,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불

 

하루는 식어가고 
빛은 더 깊어졌다

 

아침에 떨구는
한방울의 불

 

사랑합니다.
등교맞이 인사

 

던지지 않으면 번지지 않으니까
하루는 그렇게 한 방울씩 깊어집니다


1. 서론: 등교시간 마주한 응? ㅋ

 

매일 아침 스쿨버스가 멈추는 순간, 학교는 이미 시작됩니다.

 

1학년 첫 등교일이었습니다.

 

스쿨버스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큼직한 가방을 등에 짊어진 채 두리번두리번 내려오는 아이들. 그 줄 맨 뒤에서 조그마한 남자아이 하나가 버스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정말이지, 귀여워 죽겠는 아이였습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져 있고, 가방은 몸집의 절반만큼이나 컸습니다. 신발 끈은 이미 한쪽이 풀려 있었고, 눈은 아직 잠이 덜 깬 듯 살짝 부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표정으로 버스 계단을 내려오는 그 작은 발걸음이라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허리를 깊이 숙이고 두 손까지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이가 멈췄습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저를 올려다봤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허리를 90도로 꺾고 두 손을 흔들고 있는 장면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딱 한마디를 던집니다.

 

"응."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총 그 작은 다리로 아주 당당하게 걸어가 버렸습니다. 커다란 가방이 뒤뚱뒤뚱 흔들리면서 사라지는 그 작은 뒷모습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다 흘리며 멀어졌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응? 귀여워… 평생 웃겠다."

 

그런데 일주일 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가 스쿨버스에서 내리더니, 저를 보자마자 걸음을 딱 멈췄습니다. 잠깐 저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허리를  숙이고는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는, 지난주와 똑같이, 아주 당당하게 걸어가더군요. 다만 이번엔 어딘가 뿌듯한 기색이 등에서 느껴졌습니다.

 

저는 또 한참을 웃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전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중학교 3학년으로 보이는 누나의 손에 이끌려 등교하는 1학년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동생은 여전히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둘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 꽤 귀여웠습니다.

 

선생님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면, 아이는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씩씩하게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그때 누나가 짧게 말했습니다.
"인사."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잡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마디였습니다. 
"인사."

 

아이는 그래도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음 날도 같은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아이는 지나치고, 누나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인사." 
또 다음 날도. 
"인사." 
그 다음 날도. 
"인사.”

 

누나는 화내지 않았습니다. 잔소리하지 않았습니다.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같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두 달이 지났습니다. 세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 문 앞에 들어서다가, 스스로 걸음을 멈췄습니다. 누나가 말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총총총 걸어 들어갔습니다.

 

누나가 잠깐 멈추더니, 아무 말 없이 빙긋 웃었습니다. 선생님도 웃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저도 웃었습니다.

 

습관이 아이의 몸에 들어온 순간이었습니다.

 

2. 습관 형성의 교육학적 기반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뒤르켐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arete)을 선천적 자질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의 산물로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통찰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품성 교육(character education)의 철학적 토대입니다.

 

누나는 어떤 교육학 이론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 한마디를 건넸을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토스(ethos), 즉 습관적 품성은 바로 이렇게 형성됩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장면은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의 도덕 교육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뒤르켐은 『도덕 교육』(1925)에서 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규율(discipline), 집단에의 귀속(attachment to social groups), 자율성(autonomy)을 도덕 교육의 세 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누나의 반복된 "인사"는 바로 이 규율의 내면화 과정이며, 학교 문 앞에서의 인사 문화는 집단적 귀속감을 형성하는 의례(ritual)로 기능합니다.

 

3. 교육사회학적 분석 - 숫자 너머의 아이들

 

오늘날 한국 교육을 둘러싼 데이터는 두 개의 상반된 얼굴을 보여 줍니다.

 

[성취의 얼굴]

PISA 2022 결과, 대한민국 15세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수학 527점, 읽기 515점, 과학 528점으로 OECD 최상위권입니다. 수학은 OECD 37개국 중 1~2위, 전체 81개국 중 3~7위이며, 읽기와 과학 역시 OECD 최상위권입니다.

 

[행복의 얼굴]

그러나 같은 아이들의 내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2025년 5월 UNICEF 이노첸티가 발표한 『리포트 카드 19』(43개 OECD·EU 국가 대상)에서 한국은 학업·기술 역량 4위였지만, 정신건강은 3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아동행복지수 조사에서 행복지수가 '상'에 해당하는 아이는 전체의 16.4%에 불과했으며, 행복지수가 낮은 아이들은 높은 아이들에 비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53분 더 짧았습니다.

 

학업능력 세계 4위, 정신건강 34위. 이 역설이 오늘날 한국 교육의 핵심 모순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현재의 삶의 질(well-being)보다 미래의 좋은 삶(well-becoming)을 강요해 왔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지쳐 있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habitus) 개념은 이 현상을 정밀하게 설명합니다. 학교라는 장(field)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인사는 단순한 행동 강화가 아니라, 아이의 사회적 성향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아비투스를 아이들의 몸에 새기고 있을까요.

 

 4. 관계적 교육학 - 가르침은 연결로부터 시작됩니다

 

넬 나딩스(Nel Noddings)는 『배려: 교육의 윤리적 접근』(1984)에서 배려 관계(caring relation)를 교육의 근본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교사가 학습자를 수행 주체(performing subject)가 아닌 전인(whole person)으로 받아들이는 관계적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교장이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행위는 지위의 역전을 통한 배려의 표현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할 때,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임을 온몸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 인식이 일주일 뒤, "사랑합니다"라는 언어적 응답으로 돌아왔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페다고지』(1968)에서 교육을 은행 저축식 모델(banking model)이 아닌 대화적 실천(dialogical practice)으로 재정의했습니다. 학교 문 앞의 인사는 그 본질에서 대화입니다. 교장이 먼저 말을 건네고, 아이가 응답하고, 그 응답이 다시 교장의 실천을 강화합니다. 이 쌍방향적 의례가 반복될 때, 학교는 단순한 학습 장소를 넘어 공동체적 삶의 공간으로 전환됩니다.

 

데이터는 이 관계적 경험이 단순한 정서적 위안이 아니라 실질적 교육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53분 더 길었습니다. 

 

관계의 시간이 곧 행복의 시간이며, 
행복한 아이가 더 잘 배웁니다.

 

 5. 교사의 실천적 함의 - 잠재적 교육과정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십시오

 

필립 잭슨(Philip Jackson)은 『교실에서의 삶』(1968)에서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의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공식 교육과정이 교과서와 수업 계획서에 담긴다면,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의 일상적 관행, 공간 배치, 교사의 언어와 태도, 시간 구조 속에 내재합니다.

 

학교 문 앞의 인사 문화는 바로 이 잠재적 교육과정의 핵심 장면입니다. 교육과정은 교실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복도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급식실에서 "잘 먹었니"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 운동장에서 넘어진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순간이 모든 장면들이 아이의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교육적 실천입니다.

 

정신건강 순위 34위, 삶의 만족도 하위권인 이 시대에, 교사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갖는 의미는 더욱 무겁습니다.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 분석했듯,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호작용은 아이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적 인정의 의례(ritual of recognition)입니다. 교사 한 명이 매일 아침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가, 아이의 하루를  그리고 삶을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3)

보이는 수업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장면에서 마음을 다하는 것 — 그것이 잠재적 교육과정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교사의 전문성이며 소명입니다.

 

6. 결론: 학교를 움직이는 힘에 대하여

 

두 개의 숫자가 있습니다.

 

PISA 학업능력 세계 4위. 유니세프 정신건강 순위 34위.

 

이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오늘 우리 교육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동·청소년들에게 현재의 삶의 질(well-being)보다 미래의 좋은 삶(well-becoming)을 강요하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지쳐 있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변혁의 출발점은 거대한 제도 개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 문 앞에 서서 이름을 모르는 아이에게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실천. 동생에게 날마다 "인사"라고 일러주는 중학생 누나의 헌신. 같은 설명을 수십 번 반복하며 한 아이를 기다리는 교사의 인내.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아이들의 아비투스를 바꾸고, 학교의 문화를 바꾸고, 결국 교육의 본질을 회복합니다.

 

탁월함은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관계 속에서, 반복 속에서, 기다림 속에서 품성으로 변해갑니다.

 

붉은 해가 바다에 떨어지는 것은 
소멸이 아닙니다. 
번짐입니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등교맞이 인사

 

그 빛이 아이의 하루를 
어떻게 물들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던지지 않으면 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방울의 불을 던집니다.

 

사라지지 않고
아이들 속에서
빛으로 번질 것을 믿으며.

 

“사랑합니다.”​

 


◆ 주요 인용 데이터 출처

· OECD, PISA 2022 Results, OECD Publishing; 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3.12.)
· UNICEF Office of Research – Innocenti, Report Card 16: Worlds of Influence (2020) 및 국내 최신 재분석 자료(2025.5. 기준)
·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 「한국의 삶의 질 보고서」(2025) 및 OECD 비교 지표 기준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행복지수 연구」(최근 조사 기준)


 

 

칼럼니스트 박대훈

 

• 현) 태강삼육초등학교 교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광운대학교 대학원 석사(초등영어교육)
• 전국삼육초연합회 회장
• 한국사립초연합회·서울사립초연합회 부회장
• 서울시·충청북도 수업연구 발표대회 1등급
• 충북 단재연수원 1급 정교사 연수 특강 강사
• 학교법인 삼육학원 전국 예비교사·중고등부·어린이교사 수양회 초청 강의 다수 출강
• ‘어린이 수업 집중법’ ‘부부행복세미나’‘섬기는 교육행정’강의 다수 출강

• 2026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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