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이 열릴 때 소통은 시작된다
비 내리는 오후 3시,
중년의 남성 한 분이 헌혈의 집으로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는 표정에서 매봉 헌혈의 집 방문이 처음인 것처럼 느껴진다.
“ 오랜만에 헌혈하러 왔습니다, 여기 헌혈의 집은 처음이네요. ”
“ 아 그러세요? 비 오는 날,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넨 후 헌혈 전 체크해야 할 전자문진(問診)을 작성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나의 안내에 따라 문진실에 자리를 앉은 그는 처음과는 달리 조금은 편안해진 모습이다.
오랜만에 헌혈의 집 문을 두드렸다는 그에게 조심히 말을 건네 본다.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봐요.”
“ 사실 작년, 다른 지역에서 헌혈하려 했는데, 헌혈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도 모른 채 지내다가 오늘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왔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헌혈이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현재 치료 중이거나 검사 결과가 정상이지 않을 때이다. 그의 자료를 확인해 본 결과 약 처방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내 생각에 헌혈이 안 되는 이유를 간호사가 설명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헌혈자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때 마음의 문이 닫혀서 상대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 본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면, ‘소귀에 경 읽기’라는 옛 속담처럼 말은 그저 스쳐 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었던 박지연 작가의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라는 책이 떠오른다. 우리가 대화를 잘 못 하는 이유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생각나는 말을 던지기 때문이라 한다. 우선은 내 해석을 담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을 온전히 수용하는 마음으로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깊이 이해하려고 애쓸 때 그도 나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
그분과의 마음의 온도를 맞추고, 헌혈이 안 되었던 이유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해드렸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며 환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다.
비가 와서 그런지 헌혈자가 많지 않아 휴게실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더 이어 나가 본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건강하지 못하면 헌혈도 못 한다는 걸 오늘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약 먹을 일도 많아지는데,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써서 헌혈을 꾸준히 할까 합니다.”
지혈하기 위해 맞춰진 타이머 10분 알람이 울린다. 버튼을 누르며 나는 헌혈한 팔에 감겨 있던 지혈대를 푼다. 그리고 안전한 귀가를 위해 한 번 더 ‘헌혈 후 유의 사항’에 대하여 설명한다.
가방을 챙기던 그가 나에게 말한다.
“여기는 예전에 헌혈했던 센터보다 장소가 매우 협소하네요. 그래도 저는 시설 좋고, 큰 규모 헌혈의 집보다는 이곳이 좋습니다. 오늘 편안하게 헌혈하고 갑니다. ”
마음의 온도가 맞춰질 때, 닫혀 있던 우리의 마음이 비로소 열리고, 상대의 말이 들어와 머무를 수 있다.
비록 처음 만나는 사이라 할지라도,
말은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마음의 교류인 까닭이다.
정영희 작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