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 작가 에세이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습기 가득한 여름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바람은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들의 무성한 잎사귀를 흔들고는 무심히 지나간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산책로다. 길게 이어진 가로수 길은 그늘이 드리워져 뜨거운 햇살을 피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초록이 짙어가는 잎들에 시선을 주고, 잘 다져진 황톳길의 딱딱함이 전해지는 발바닥에 신경을 쓰며 출발하는 길. 하지만 어느새 생각은 정해진 방향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에서 시작된 생각은 너무 비싸진 시장바구니 물가에 불만을 쏟아낸다. 그러다 금방 며칠 후에 있을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나에게 “나 지금 뭐 하고 있던 거지?”라는 깨달음이 왔을 때는 이미 10여 분을 걸어온 후다. 그 1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몸은 습관적으로 걷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 사이에 있던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없다. “그게 어쨌다고? 무슨 문제 있어?”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이
- 대한민국교육신문
- 2024-07-02 0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