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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수)

김연희 작가 에세이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습기 가득한 여름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바람은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들의 무성한 잎사귀를 흔들고는 무심히 지나간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산책로다. 길게 이어진 가로수 길은 그늘이 드리워져 뜨거운 햇살을 피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초록이 짙어가는 잎들에 시선을 주고, 잘 다져진 황톳길의 딱딱함이 전해지는 발바닥에 신경을 쓰며 출발하는 길. 하지만 어느새 생각은 정해진 방향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에서 시작된 생각은 너무 비싸진 시장바구니 물가에 불만을 쏟아낸다. 그러다 금방 며칠 후에 있을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나에게 나 지금 뭐 하고 있던 거지?”라는 깨달음이 왔을 때는 이미 10여 분을 걸어온 후다. 1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몸은 습관적으로 걷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 사이에 있던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없다.

 

 

 

그게 어쨌다고? 무슨 문제 있어?”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이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한 번쯤은 읽고, 들어보았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란 말은 무슨 뜻일까? 예를 들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얘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일까?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란 것은 내가 있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지금으로 다시 소환하지도 않으며 다가올 미래를 미리 빌려오지 않고 현재에 머물며, 오직 지금 당신이 한숨, 한숨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순간을 생생히 느끼며 산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글을 적는 순간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고민을 상담해왔던 친구가 했던 말을 새삼 떠올리고, 다른 말을 해 주었어야 했나 후회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내가 모순으로 보이겠지만 그것이 그만큼 쉬운 일이었으면 오래전부터 현자들이 설파했을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현재의 순간에 존재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좋은 것이든 부정적이든, 과거와 비교해서 오늘의 나를 판단하지 말고, 어떤 결과이든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짐작하고 걱정하면서 오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가로수 길을 묵묵히 걸어본다. 늘 그렇듯이 생각은 시공을 넘나들고 싶어 하지만, 그때마다 알아차리려고 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내가 내디디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에 생생한 지금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면, 상대방과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살지 않으면, 행복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과거의 문을 닫지 말고 가끔씩 그 문을 들여다보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