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6 (월)

내신과 수능의 괴리가 낳은 공교육의 불신

매년 대부분의 일반고등학교든 속앓이를 하듯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내의 성실한 우등생들이 주요 대학이 요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의 최저 기준(2개 영역 2등급 이상) 미달자가 되어 학교별 교육 성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나아가 공교육의 실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우절의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가 매년 입시철마다 비극적인 실화로 반복되고 있다.

 

고교 3년 내내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며 내신 1등급을 놓치지 않았던 학생이, 수능 당일 ‘2개 영역 2등급’이라는 최저학력기준조차 맞추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장면은 이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학원 도움 없이 오로지 학교 수업과 자습에 충실했던 ‘성실한 모범생’이 겪는 이 좌절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등급의 역설’로 몰아넣었는가?

 

​내신 1등급임에도 수능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이른바 ‘수능 미달’ 현상은 지방 일반고와 교육 소외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2024학년도 대입 결과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내신 우수자 중 상당수가 수능 최저 기준 통과율에서 수도권 학생들과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실력 부족’의 문제가 아닌, 평가 방식의 질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학교 내신은 정해진 범위, 익숙한 교과서, 그리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얼마나 꼼꼼히 기억하느냐를 묻는 일종의 ‘관리형 평가’다. 자기주도학습 위주의 학생은 이 닫힌 체제 안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것은 일반적이다. 반면 수능은 처음 보는 지문과 생소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을 요구한다. 소위 ‘수능적 사고력’은 단순 반복 학습이 아닌, 지식의 전이(轉移) 능력을 요구한다는 차이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일선 현장에서 이러한 양자 괴리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보자. 여기에는 세 가지의 단절 현상이 존재한다. ​첫째,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드는 상대평가의 함정이다. ​소규모 학교나 특정 지역 학교에서 내신 1등급은 ‘그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일 뿐이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과 경쟁하는 수능에서는 표준점수와 백분위가 객관적 지표가 된다. 학교 시험이 변별력을 위해 지엽적인 암기를 강요하는 사이, 학생들은 깊은 학문의 연계성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둘째, ‘사교육’에 의존하는 수능 난이도 조절이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은 최신 수능 트렌드와 이른바 ‘킬러 문항(혹은 준킬러 문항)’의 풀이 기술에서 소외된다. EBS 연계율이 높다고는 하나, 실제 시험장에서 체감하는 변형 지문의 난이도는 자기주도학습만으로 대적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는 공교육의 평가(내신)와 국가 단위 평가(수능)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증거다.

​셋째, ‘수업’과 ‘평가’의 괴리이다. ​많은 교실에서 수업은 ‘개념 전달’에 머물지만, 수능은 ‘개념의 복합적 응용’을 묻는다. 학교 시험이 수능형 문항을 출제하려 해도 학부모의 민원이나 성적 이의 신청을 우려해 교과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어적 출제’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학교는 아이들을 ‘안전한 온실’에 가두고, 수능은 그들을 ‘거친 들녘’으로 내던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한 사례를 들어 본다, ​전남의 한 일반고를 졸업한 A는 3년간 학원을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새벽 6시에 등교해 밤 11시까지 면학실을 지켰고, 내신 평점 1.1이라는 압도적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수시 모집에서 지원한 모든 상위권 대학에서 탈락했다. 그 이유는 ‘수능 최저 기준 미달’에 있었다. A는 말했다. "학교 시험은 선생님이 나누어준 유인물만 다 외우면 100점을 맞았어요. 그런데 수능 시험지를 받는 순간, 제가 배운 언어와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이 사례는 개인의 노력이 시스템의 결함에 배신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노~오력의 배신 이란 코믹한 용어를 등장시켰고, 교육방송(EBS)의 한 다큐멘터리 '시험' 편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가 평가하는 방식이 아이들의 사고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야 한다.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의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어떻게 말인가?

 

첫째, ​내신 평가의 ‘수능화’가 아닌, 수능의 ‘절대평가 및 자격 고사화’이다. 내신 1등급이 수능 최저를 못 맞추는 게 문제라면, 수능을 대학 수학 능력을 검증하는 ‘자격 고사’로 전환하고 절대평가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이는 과도한 변별력 경쟁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 역량을 갖췄다면 대학 문을 열어주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식 서·논술형 평가의 전반적인 도입이다. 단순 오지 선택형 수능에서 벗어나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측정하는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주관식 서·논술형 평가는 암기 위주의 자기주도학습 학생들이 가진 ‘깊이 있는 사고’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보완적 도구라 할 것이다.

 

셋째, ​학교 내부의 ‘평가 전문성’ 강화이다. 교사들이 수능 수준의 고차원적 사고 문항을 개발하고 이를 내신에 녹여낼 수 있도록 ‘교사 연수 강화’와 ‘문항 제작 센터’를 학교별·지역별로 구축해야 한다. 이는 학원 강사의 ‘스킬’이 아닌 교사의 ‘통찰’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이 실패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내신 1등급의 좌절은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학교 공부만으로는 수능을 통과할 수 없다’는 명제를 방치한 일종의 국가 직무 유기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1등급이 수능 최저 기준을 못 맞추는가?”가 아니라, “왜 학교 공부와 국가시험(수능)은 이토록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4월의 교정에서 중간고사를 앞두고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전국의 많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성실함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교육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각, 뉴스는 2027학년도를 위한 수능 시험을 공교육의 범위 내에서 출제하겠다고 발표하는 신임 교육평가원장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과연 우리 교육에서 정의(正義)는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내신 1등급과 수능의 괴리가 더 이상 공교육의 불신을 유발하는 교육의 비극으로 작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인물·기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