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하루는 영양교사가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 하듯이 “걱정이에요, 아이들이 고기반찬을 더 많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네요~”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언뜻 듣기와는 달리 아이들의 올바른 신체적 성장에 깊은 고민이 묻어 있다. 남학교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육류에의 편식 성향이 강하다는 우려 섞인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초중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식판 위의 교육’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아이들의 몸을 만드는 '먹거리 교육'은 입시 우선주의에 밀려 한참이나 비정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편의점 간식과 당분이 가득한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급식 시간에 채소를 골라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뇌세포를 깨우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에너지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문제집이 아니라 '식판' 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채소와 과일을 멀리하는 편식 습관을 방치하는 것은, 아이의 학업 역량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보충 수업 내지 다양한 방과후 학습에는 열을 올리지만, 영양 섭취가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는 실제로는 거의 무관심하다. 그만큼 학력 향상에 비해서 음식 섭취에 대한 관심과 실천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뇌 과학 연구들은 식습관과 학력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경고하고 있다.
영국의 '급식 혁명(Jamie's School Dinners)'의 사례를 보자. 유명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주도한 영국의 학교 급식 개선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위주의 급식을 신선한 채소와 유기농 식단으로 바꾼 결과, 학생들의 집중력이 몰라보게 향상되었고 결석률은 감소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유의미한 점수 상승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에 함유된 비타민과 항산화 성분은 뇌의 염증을 줄이고 신경 전달 물질의 활성화를 돕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적 근거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 섭취량이 높은 학생일수록 읽기 및 수학 점수에서 더 높은 성적을 거둘 확률이 높았다. 이제 '학력 향상'을 원한다면 학원 시간을 늘릴 것이 아니라, 식판 위의 초록색 비중을 늘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에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편식은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아이들의 정서적 조절 능력과도 곧바로 연결된다. 가공식품에 포함된 과도한 첨가물과 당분은 인슐린 수치를 널뛰게 하며, 이는 아이들을 산만하고 공격적으로 만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까지도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집중하지 못한 채 산만하다고 불평하는 교사들이 많다.
이와는 달리, 채소 중심의 균형 잡힌 식사는 세로토닌 합성을 도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다.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정서 조절 장애나 교실 붕괴 현상의 이면에는 '영양 불균형'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식생활 교육은 생활 지도의 핵심이자 인성 교육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다양한 해결책 모색의 하나로 집중을 받고 있다.
이제 학교 급식실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당'이 아니라, 생존 기술과 철학을 배우는 '제2의 교실'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혁신적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식판 데이터 기반' 맞춤형 영양 피드백, 일명 Food-Tech 교육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걸맞게 급식 잔반 처리 시스템을 데이터화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학생이 남긴 채소의 종류와 양을 AI가 분석하여 학부모에게 "이번 주 00이는 비타민K 섭취가 부족했습니다"라는 리포트를 발송하고, 이를 가정 교육과 연계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학생 누구나 자신의 섭취 데이터를 스스로 모니터링하며 '건강 주권'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교실 밖 '도심형 스마트팜' 연계 교육이다. 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낯설음'이다. 학교 옥상이나 유휴 공간에 스마트팜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직접 수경 재배로 상추와 토마토를 키우게 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가 급식 식단에 오르는 연계 과정을 직접 경험할 때, 채소는 기피 대상이 아니라 '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이는 생태 교육과 영양 교육이 결합된 최고의 융합 수업이라 할 것이다.
셋째, 급식 시간의 '식사 인문학'의 도입이다. 급식 시간 20~30분을 단순히 배고픔을 해치우는 시간이 아닌, 영양사나 교사가 오늘의 식재료에 담긴 역사와 영양학적 가치를 1~2분 내외로 짧게 들려주는 '시식(tasting) 토크'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 파프리카의 빨간색은 여러분의 심장을 튼튼하게 합니다"라는 짧은 울림이 아이들의 젓가락 방향과 식사에 임하는 전반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적분과 중요한 과학적 원리들은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음식을 선택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비만, 당뇨 등 만성 질환으로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지금 학교에서 실시 하는 식생활 교육은 그 어떤 교육보다 효율적인 국가적 방역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인식으로 '먹거리 교육'을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식판 위에 놓인 사과 한 알, 시금치 한 줄기가 아이의 뇌를 깨우고 성격을 형성하며 미래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믿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교육 당국과 학교, 가정이 힘을 합쳐 편식하는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채소와 과일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는지 성찰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교과서 속 지식을 넘어 오늘 점심 식판 위에 놓인 푸른 채소 한 점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고른 영양 섭취로 인한 튼튼한 체력과 맑은 정신, 그리고 식재료 하나에도 생산자에게 골고루 감사하는 마음 등 삶을 위한 철학 위에 쌓아 올린 학력이야말로 견고한 미래 성공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