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한 건 바로 기다림, 그리고 더치커피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있는 휴일. 나에게 어떤 시간을 선물할까 잠시 고민한다. 고민을 끝내고 과테말라 원두를 그라인딩 한다. 분쇄된 원두가루 위로 물이 조금씩 떨어지도록 더치커피 추출도구의 밸브를 조절한다.
“기다림”
커피의 시간이 멈춘 듯한 휴일 아침, 나에게 선물한 건 기다림이다.
버튼을 누르면 10초 이내에 추출이 시작되는 에스프레소, 물을 붓기 시작하면 몇 초 이내에 서버 안으로 커피가 추출되기 시작하는 핸드드립 커피와는 다른 더치커피,
오늘은 느림의 미학이 맛에 숨겨져 있는 더치커피를 나에게 선물하려 한다.
더치커피(Dutch Coffee, Cold Drip Coffee)는 ‘네덜란드식 커피’라는 의미이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17세기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대량으로 생산한 후, 유럽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추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으로 가는 긴 항해 동안, 커피를 끓여 보관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차가운 물로 천천히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 개발된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차가운 물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할 경우, 무더운 기후에도 보관이 쉽고, 항해의 긴 시간 동안 커피 맛이 변질되거나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에도 시대(江戸時代, Edo Period) 외국과의 교류에 사용했던 데지마(나가사키 항에 만들어진 인공 섬)를 통해 일본에 전해지게 되었다. 네덜란드와의 무역으로 일본에 전해진 더치커피는 대형 유리관을 사용해 물이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지며 커피가 추출되는 교토식 콜드브루(Kyoto-style Cold Brew)로 발전되었다.
더치커피를 콜드브루(Cold Brew)라고도 하는데, 이는 차가운 물로 추출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로 추출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더치커피와 콜드브루는 추출 과정과 맛에 작은 차이점이 있다.
콜드브루(Cold Brew)는 원두 가루를 차가운 물에 넣어 장시간(12시간~24시간) 커피 성분이 우러나는 침출식(Immersion) 방식이고 더치커피(Dutch Coffee)는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뜨리는 점적(Drip) 방식이다.
콜드브루는 침출식 방식으로 추출되기에 부드럽고 묵직한 바디감이 일반적인 특징이고, 더치커피는 콜드브루보다 가볍지만 깔끔한 향미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두 추출방식의 카페인 함량을 비교해보면 오랜 시간 동안 원두 가루가 찬물에 잠겨 성분이 추출되는 콜드브루의 카페인 함량이 상대적 높다.
저녁이 되고, 드디어 검은 더치커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리고 또 한 방울.
천천히 추출되는 커피를 바라본다. 조급함 없이 커피 성분을 검은색으로 담아 떨어지는 물방울, 오랜 시간 원두 가루에 차가운 물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며 적셔지기에 부드러운 질감과 깊은 풍미, 깔끔하면서도 여운을 품는 더치커피.
멈추지 않을 듯, 바쁘게 보냈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흘려보냈던 하루.
기다림이 선물한 고요한 시간, 나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동안 미처 알아주지 못했던 순간들과 감정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른 이와 다른 속도로 삶을 살기에 기다림이 필요한 이가 있다면, 마주하기 힘든 감정과 함께 하는 이가 있다면, 더치커피 한 잔에 이 말을 담아 건네주고 싶다.
“당신의 인생이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담기 위해,
인내와 용기라는 힘은 천천히 가야만 비로소 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