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천국 문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 그는 살아생전에 가난한 이웃을 돕기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사는 그의 천국 입장을 거부했다. “당신은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내가 무엇을 훔쳤다는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존엄성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존엄성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오직 구걸을 할 때만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84쪽). 가난한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 얼마나 망설이고 얼마나 자존심 상해했으며 자신의 신세를 슬퍼했을까. 레바논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청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 때 고개를 돌리십시오. 그들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마주치지 않도록-”
기독교의 십계명 중 제 8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이다. 글자 수도 몇 자 안 되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난해 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도둑질의 외연(外延)을 금품이나 물건 따위 즉, 유형(有形)의 것에 한정 시킬 때는 간단하다 할 수 있으나 타인의 명예나 자존심 또는 시간이나 권리 같은 무형(無刑)의 것에까지 넓힌다면 훨씬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심지어 성경은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이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했다고 한다(사무엘하15:6). 그렇다면 도둑질의 대상에 사람의 마음도 포함된다.
따라서 탈무드는 도둑질의 실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에게 고용된 사람이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요, 일해야 할 시간에 잡담이나 개인적 일을 보는 것도 도둑질이라 명시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다음날 일해야 할 사람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지 않아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하지 못하는 것도 죄라고 말하고 있다. 또 남에게 일을 시킨 사람이 임금을 제 때 주지 않고 다음 날 받으러 오라고 하는 것도 죄라고 한다. 형편상 그러한 경우라면 자신이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헛걸음 하게 하는 것 또 다시 오게 하는 것 등은 상대방의 시간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탈무드에 의하면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진열대의 옷이며 이불이며 많은 것을 흩으러놓고 당연하다는 듯이 다른 가게로 향하는 것도 도둑질이다. 심지어는 매장에 가서 시세를 확인한 다음 인터넷에서 구매를 하는 일도 그렇다. 물건을 팔기 위해 성의껏 상담을 하고 손님이 떠난 뒤에 다시 정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수고를 하게 하는 것은 분명 도둑질이다. 충실하지 못한 수업은 학습자의 시간을 도둑질하고 배움의 기회를 도둑질 하는 것이요 은혜도 능력도 없는 설교 또한 회중의 시간과 함께 구원의 기회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재미있으나 웃을 수만은 없는 비유가 있다. “ 스위스인은 시간을 계산한다. 프랑스인은 시간을 저축한다. 이탈리아인은 시간을 낭비한다. 미국인은 시간을 돈으로 여긴다. 인도인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일본인은 시간을 쪼개 쓴다. 중국인은 시간을 무시한다. 독일인은 시간에 맞춰 나간다. 북한 사람은 시간을 모른다. 한국인은? 한국인은 남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한창 바삐 일하는 사람을 찾아가 ‘바쁘십니까?’ 하고 묻는다. 대개는 ‘별로’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대단치도 않는 얘기로 남의 바쁜 일손을 방해한다. ‘바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두어 시간 수다를 떨고 나서도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고 한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작은 것에는 민감하지만 큰 것은 간과하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절구절국(窃钩窃国)을 말했다. 갈고리를 훔친 좀도둑은 사형당하고,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부귀를 누린다는 뜻으로, 시비 상벌이 명위에 따라 다름을 비유하거나 법의 비합리성을 풍자하여 이르는 말이다. 바르지 못한 정치나 정책 또한 궁극적으로 백성의 것을 훔치는 도적질이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