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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 (화)

최홍석 칼럼 - 주파수

농번기 철이 되면 농사짓는 우리 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나와 동생도 농사일에 동원되었다. 잔심부름 정도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꽤 요긴하게 쓰였다. 모내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어느 날, 동생은 주막에 가서 인부들의 술을 사오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떠났다. 그러나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초조해진 아버지는 2차로 나를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셨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주막으로 향하던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지금쯤 구슬땀을 흘리며 돌아오고 있어야 할 동생은 주전자를 팽개친 채 냇물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부지런히 심부름을 가고 있노라니 냇물 속에 솥뚜껑만한 자라가 물풀에 걸려 허둥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힘을 합하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나도 합류를 했다. 그리하여 자라 체포에 나섰고 시간은 흘렀다. 멀리서 지르시는 아버지의 노한 고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자라의 행방을 좇았고 그날 동생과 나는 죽도록 혼이 났다.

 

레리 L 릭텐월터가 쓴 『잘 박힌 못』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미국인이 인디언 친구와 함께 맨해튼 시내를 걷고 있었다. 대도시의 소음과 들끓는 군중 속을 헤쳐 나갈 때에 그 인디언은 귀뚜라미 소리를 감지했다. 그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자 친구는 웃으면서 “차가 빵빵거리는데 이런 소음 속에서 어떻게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했다. 그 인디언이 웅크려 앉아 시장에서 나온 쓰레기더미를 조금 치워내자 귀뚜라미가 나왔다. 인디언 친구가 말했다.

 

“들려오는 소리는 무엇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너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있지.” 인디언은 말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놓치고 있지만 이것을 잠깐 봐.” 인디언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더니 한 손 가득 동전을 꺼내어 인도에 내던졌다. 그러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동전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의 귀는 귀뚜라미 소리가 아니라 돈 소리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무엇을 듣기를 원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실제로 한 소방관은 멀리서 들리는 소방벨 소리에는 민감하지만 옆에서 울어대는 아기 울음을 듣지 못하고 잠을 자는데, 반대로 그의 아내는 아기 울음소리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만 소방벨이 시끄럽게 울어도 잠을 잔다는 얘기가 있다.

 

한동안의 소강상태 끝나고 다시 냉전체제가 되었다. 세계 각국은 이웃나라를 점령하기 위하여 혹은 점령당하지 않기 위하여 군비 확충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컴퓨터로 치르는 전쟁에서는 통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전파를 교란하고 통신을 두절시켜 적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한편 생존경쟁에 쫓기는 현대인은 멈추어 서서 사색을 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 그들의 앞에는 팽팽한 긴장과 몰개성만이 있다. 그래서 불행하지만 그것마저 느끼지 못한다. 좀 더 풍요롭게 살려면 내면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불멸의 고전(古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의 한 대목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성공하기 위해 조급히 굴며 또한 그렇게 사업적일까. 만약 어떤 이가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박자가 느리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그로 하여금 그가 듣는 음악에 맞춰 걸어가게 하라.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하는가. 아직 봄인데 서둘러 여름으로 가야만 하는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